[길거리 스타] 동성로 명물 외국인 노점상

입력 2006-05-27 07:20:07

"싸게 준다카이.", "학생들은 더 싸게 해준다. 돈이 어딨노?" "안 사도 괜찮다. 앉아서 보고 가라."

대구도심 동성로 중앙파출소와 대구백화점 중간 지점. 오후 4시면 어김없이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흑인을 만난다. 데이비드 존슨(33) 씨. 그는 아프리카 세네갈 출신 노점상이다. 이미 5년 경력의 베테랑. 웨슬리 스나입스를 연상시키는 190cm의 훤칠한 외모와 멋쟁이 옷차림. 겉모습 만으로도 이미 길가는 행인들을 사로 잡는다. 거기다 한번씩 그의 독특한 장사비법인 경상도 반말 사투리라도 쏟아내면 웬만한 사람은 '까르르' 자지러진다.

"가리지날 없어, 전부 오리지날이야! 진짜라카이."

그가 취급하는 품목은 목걸이, 반지 등 여성용 액세서리부터 지갑, 벨트, 전세계 민속품 등 다양하다. 물건은 가나, 이집트, 태국, 대만 등 전 세계 15개국에서 구해온 보기 드문 물건들. 하지만 몇몇 특이한 물건들을 제외하곤 국내 보세점 등에서 싸게 대량 구매한다.

오후 4시. 준비해온 물건을 길거리에 펼치기 시작하자마자 10여명이 모여든다. 이때부터는 쉴 틈이 없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않게 동작도 말도 재빠르다.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계산하고 또다른 손님을 맞이한다.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판매하는 것도 그만의 영업전략. 오후 3~4시쯤 나와서 해질 무렵인 오후 7~8시만 되면 철수한다.

목걸이 한 쌍을 구입한 김진영(16.대구 복현중3) 양은 "흑인이 경상도 사투리로 물건을 파니까 신기해서 자꾸 찾아오게 된다."며 "다른 수입 액세서리 가게보다 종류도 많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고 웃었다. '악세서리 마니아'라 자부하는 이선영(34.여.대구시 남구 봉덕동) 씨는 "손님들에게 어울릴만한 제품을 딱 골라주거나 기분을 맞춰주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넘버 원 장사꾼"이라고 평가했다.

"얼마나 파느냐?" 그의 독특한 영업방식에 맞춰 다짜고짜 반말투로 물었다. 영업기밀이라던 그도 계속된 질문에 귀찮은듯 "하루 100만 원을 안 팔겠나?"라며 농반진반으로 입을 막아버린다. 역시 반말투다.

존슨 씨가 대구 도심에 자리를 잡게 된 건 아내가 대구의 미군부대 군인이기 때문. 5년 전부터 대구에 정착하게 된 그는 뭔가 할 일을 찾다가 '동성로에서 세계 각국에서 가져온 액세서리를 팔면 어떨까?'라는 갑작스런 생각을 바로 실천에 옮겼다. 그의 생각은 바로 '대박'으로 이어졌다. 이젠 존슨 씨 때문에 인근에 다른 액세서리 노점까지 생겼다.

그는 길거리 판매로 집 한 채를 살 정도로 돈을 벌었다고 했다. 이젠 아내까지 해외로 나가면 남편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해 올 정도. 하지만 처음부터 순탄치만은 않았다. 가끔씩 자릿세를 뜯으러 오는 조폭들과 마찰도 있었다. 지금처럼 한국말이 유창하지 못했던 그는 태연하게 대처했다. "뭐? 우짜라고?", "돈을 니한테 왜 주나?" 한국식 자릿세를 이해하지 못한 그에게 조폭들도 손을 들고 말았다. 하지만 가끔 경찰이 와서 "노점판을 걷으라."고 하면 그는 두말없이 짐을 쌌다. 이젠 자릿세를 뜯는 불량배도 없고 경찰도 그가 장사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

그는 비나 눈이 오는 날을 빼곤 거의 매일 영업에 나선다. 그런 그도 겨울만 되면 한국을 뜬다. 추위에 익숙하지 못하다보니 겨울을 따뜻한 세네갈에서 보낸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세네갈 대표팀의 평가전이 열린 지난 23일. 역시 경상도 사투리로 소감을 나타냈다. "아이고, 나를 먹여살려주는 한국을 응원하고 싶은데 그래도 우째 내가 태어난 나라를 배반하겠노?"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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