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서] 淸魚之濁水, 濁魚之淸水

입력 2006-05-27 07:23:16

맑은 물만 먹고, 맑은 물만 배설하는 물고기를 이름 하여 청어(淸魚)라 한다. 닥치는 대로 먹고 싸는 물고기를 탁어(濁魚)라 한다. 청어는 이미 나 홀로 존귀하다. 무엇에도 해를 주지 않으며 어떤 물질적 욕심도 없다. 탁어란 놈은 눈에 보이는 것은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리고 죽도록 먹고서도 먹을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 청어를 맑은 물에서 들어내어 탁수에 넣었다. 탁어가 배설한 욕심의 찌꺼기들이 우글거리는 속에서 대부분의 청어는 입과 창자와 항문이 모두 막혀 죽고 만다. 탁어를 들어내어 청수에 넣었다. 맑은 물을 아무리 마셔도 끝없는 허기를 채울 길 없어 마침내 굶어 죽고 만다.

청어는 맑은 물만으로도 배불렀고 행복하기 그지없는데 탁어는 지옥보다 더한 고통 속에 죽어간다. 다 같은 물인데 청어는 탁수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생을 마치고 탁어는 청수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굶주려 죽는다.

청수는 아무것도 없는 물이기에 맑은 물이 아니다. 있다. 적게 있는 것이 아니라 조화로운 만큼 그저 있어야 할 만큼 있다. 먹지 않고 유지될 물고기의 몸뚱이란 없는 법이다. 탁수에는 더러운 배설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이 있다. 더러운 탐욕의 배설물을 안고 있는 맑은 물이 있다. 청어와 탁어가 죽은 것은 탁수와 청수의 탓이 아니다.

탁수속의 마지막 청어를 원하는 물고기가 있다. 자신의 입과 창자를 통해 모든 탁수를 걸러내려 한다. 아! 눈부시게 아름다운 각오가 아닌가. 청수 속에 생존하는 최초의 탁어를 갈망하는 물고기가 있다. 뱉어낸 더러운 배설물을 끝없이 되 마셔 끝내는 맑은 살결이 되려한다. 그렇다! 눈물 나는 참회의 진정성이 아닌가. 과연 이 청어와 탁어는 무엇이 다른가? 청어와 탁어가 사랑하지 않을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의 연못이다. 청수와 탁수가 둘이 아니었다. 휘감겨 돌아가는 생명의 소용돌이처럼 때로는 둘로 때로는 하나로 우리의 살아있음 그자체이다. 청어는 탁어를 사랑하고 배우며, 탁어는 청어를 믿고 존경하면 그만이다.

선거 시즌이 도래했다. 상대편을 욕하는 방식의 자해 공갈단이 줄어들길 소망한다. 아름다운 각오와 참회의 진정성이 넘실대는 축제이길 소망한다. 탁수속의 마지막 청어가, 또 청수속의 처음 탁어가 많이 많이 나오길 소망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헤엄쳐야할 탁수 이면서 청수인 생명의 연못이란걸 웃으며 서로에게 말하자.

황보진호 하늘북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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