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살아있다] ①청송 5일장

입력 2006-05-27 07:56:40

경북지역 재래시장은 상설 97곳, 5일장 95곳 등 모두 192곳에 이른다. 이들 중에는 비가림 시설과 주차장, 수세식 화장실 등을 갖춘 세련된 시장이 있는가 하면, 평소에는 한적한 공터지만 장날만 되면 북적대는 말 그대로 시골 5일장도 있다. 편리를 좇아 백화점, 대형 소매점만 오가는 도시민들은 결코 느껴볼 수 없는 넉넉함과 푸근함이 살아있는 곳, 바로 농촌 장터다. 매달 한 차례 경북도 재래시장 마케팅 투어단과 함께 시골 장터를 찾아간다. 주변 볼거리와 맛갈스런 향토 음식을 만날 수 있는 식당도 함께 소개한다. 자녀들과 함께 한달에 한 번 마음의 여유를 찾아 풋풋한 삶의 향기가 느껴지는 시골 장터로 찾아가보면 어떨까?

"보이소. 산나물 좀 사가이소. 어제 산에서 바로 캔거라 싱싱하니더. 안 사면 손해라 안카니껴."

시골 5일장치고 정겹지 않은 곳이 있을까? 하지만 청송 5일장은 유난스러울 만큼 넉넉한 정이 느껴진다. 4일과 9일에 열리는 청송 5일장. 아직도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만큼 소박함과 사람사는 내음이 물씬 풍기는 시골 장터 그대로다.

대구에서 차를 타고 꼬박 2시간을 달려야 청송에 닿는다. 대구-포항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북영천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청송행 국도로 접어들면 가장 빨리 갈 수 있다. 시골 5일장을 보려고 그곳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막상 청송 장터에 발을 내딛으면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청송읍이 워낙 작기도 하지만 인심도 좋아서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청송에 들어선 뒤 만나는 첫 삼거리에서 좌회전한 뒤 300m쯤 가면 장터가 나온다. 읍내를 끼고 도는 용전천변에 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지난 24일 찾아간 청송 5일장에선 싱싱한 산나물과 수박·토마토·참외 모종이 단연 인기였다. 원래 청송 장은 오전 7시부터 30분 가량 가장 북적댄다. 주왕산을 비롯한 인근 관광지에서 식당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와 산나물을 싹쓸이해 가기 때문. 아침에 반짝 시장이 끝나면 오전엔 다소 한가한 분위기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오전 11시를 조금 넘어서 대구에서 온 재래시장 투어단이 도착하자 장터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경북도는 매달 대구의 주부들로부터 사전 접수를 받아 무료로 재래시장과 인근 관광지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이날도 주부 90여명이 버스 2대에 나눠타고 청송 장을 찾았다.

남아있던 산나물이며 모종들이 금세 동이 났다. 주부들은 싱싱한 물건을 싸게 샀다며 환하게 웃고, 상인들은 모처럼 장날다운 장날이라며 싱글벙글. 하지만 청송 장의 매력은 물건이 싸고 싱싱한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1천여 평 남짓한 크지 않은 장터지만 볼거리며 먹을거리가 넉넉하다. 영덕에서 가깝다보니 활어 회도 즐길 수 있고, 시골 장터에서만 볼 수 있는 갖가지 이색 상품들이 즐비하다. 옛날 과자부터 즉석 튀김, 5천 원짜리 몸빼바지와 셔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먹는 양념 묵까지….

게다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물건을 사도 그만, 안사도 그만이다. 노인들은 일찌감치 시장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소주에 묵 안주를 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운다. 물건 팔러 나온 시골 할머니는 계산도 서투르다. 손님이 값을 물어보고 거스름돈까지 일일이 알려줘야 한다. "서두를 거 뭐 있노? 장날에 나와서 오랜 만에 친구도 보고, 기분 좋으면 술도 한 잔 하고 그란다." 진보에서 나물을 팔러왔다는 한 할머니의 말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건 사라고 한마디씩 툭 던지지만 그렇다고 채근하는 법은 없다. 사람살이가 다 그렇다는 식이다. 일분 일초를 다투는 도시 사람들에겐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다.

출출하면 장터 구석에 있는 보리밥집이 기다리고 있다. 나물을 잔뜩 얹은 비빔밥에 구수한 시골 된장찌개가 나온다. 가격은 3천 원. "장날이면 100그릇 정도 파느냐?"는 물음에 주인 할머니가 "그랬으면 부자됐겠다."며 밉지 않게 눈을 흘긴다.

돌아오는 길에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 유명한 주산지를 둘러보면 금상첨화다. 청송 읍에서 3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나온다. 새벽녘에 물안개가 낀 모습이 장관이라지만 그걸 보겠다고 새벽 걸음하기에는 게으름이 발목을 잡는다. 낮에 보는 주산지도 결코 실망스럽지 않다. 돌아오는 길, 피곤함보다는 상쾌함이 묻어난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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