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의 A씨는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소위 '선거꾼'이다. 평범한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가도 선거철에는 사표를 내던지고 선거판에 뛰어드는 사람이다.
평소에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채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사는데 선거때만 되면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몸은 활기로 넘쳐난다. 지난 20년간 선거의 짜릿한 맛에 길들여진 탓에 이제는 '불치병'이 됐다고 스스로 털어놓는다.
이번 5.31 지방선거에도 예년과 다름없이 한 기초단체장 후보 캠프에서 기획업무를 맡고 있다. 선거 자체를 즐긴다는 그 마저도 "이렇게 맥빠진 선거는 처음"이라고 했다. 대구 경북에서 10년 넘게 한나라당 독주가 계속됐다고 하지만 지금처럼 일방적인 질주는 일찌기 없을 것이라고 한다.
선거 막판에는 불과 몇백표 득표에 그치는 꼴찌 후보일망정 "혹시 그래도..." "막판 뒤집기를...."이라는 공상을 하는게 보통이다. 그렇지만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 이후에는 한나라당 후보를 제외하고는 그런 상상조차 하기 힘든 분위기다.
대구 경북에서는 한나라당이 시장, 구청장·군수는 물론이고 기초의원 까지도 완전 석권할 태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벌써 파장 분위기가 엿보인다. 한나라당 후보는 여유작작이고 비한나라당 후보는 자포자기 상태다. 예전에 'D-5일'이면 눈코 뜰새 없는 때인데도 치열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거리의 유세차량에서 여성 자원봉사자들이 손가락으로 기호를 그려주지만 그것마저 허망한 몸짓으로 느껴진다.
일부 한나라당 후보 캠프에는 적막한 사무실에서 운동원 몇몇이 한가롭게 전화를 받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참모들은 모여앉으면 논공행상을 화제로 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대구시청 공무원들은 벌써부터 한나라당 후보의 동향(同鄕)인사들을 '4인방'으로 지칭하면서 누가 어느 자리로 옮겨갈 것이라는 얘기로 시끌벅적하고 경북도청에서도 누가 줄을 댔다느니 특정 지역출신이 우대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모 후보 부인은 어떻다는 등 제법 그럴듯한 얘기도 나오고 있다. 경쟁없는 선거가 빚어내는 풍경들이다.
누가 보더라도 게임이 끝났다는 걸 안다. 선거를 '선택의 미학'이라고 했지만 지역 유권자들에게는 전혀 필요없는 말인 듯 하다. '메니페스토(후보공약 평가)'니 '인물검증'이라니 하는 말의 성찬이 요란했던 것이 불과 며칠전인데 이제는 후보들이 내건 당(黨)간판이 더 중요할 뿐이다.
물론 국회의원들이 중심이 된 공천심사위가 투명·공정 공천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기초단체장에 여성을 배려하고, 광역·기초의원 선거에도 여성과 전문성 등을 고려한 흔적은 읶기는 하다.
하지만 큰 그림은 그럴싸하게 포장한 듯 하지만 밑그림을 들여다보면 공천 후유증, 밀실 공천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리당략이 아닌, 국회의원과의 친소관계가 아닌, 지역을 위해 참일꾼을 뽑아야 하는 이번 지방선거에 지역민들이 그리 원하지 않는 인물들이 선수로 많이 출전한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이를 두고 시당 한 당직자는 "시·도당에서 공천심사를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더 나았다."고 했다.
고장을 위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후보를 찾는 것은 유권자의 기본 책무다.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후보의 당 간판이나 정치적 배경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누구나 안다. 이웃과 부대끼며 어려움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구일지 한번 돌아보자.
박병선 기획탐사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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