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각성의 현장을 찾아서] ⑩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산

입력 2006-05-26 07:54:40

두류산이라고도 하는 지리산에 가자. 옛 사람들과 함께. "두류산은 내 고향의 산이다", "남북으로 나다니면서 벼슬살이하고 세상사에 골몰하다가 벌써 마흔 살이 되었으나 아직 이 산을 찾지 못했다." 김종직(金宗直)은 '유두류록'(遊頭流錄) 첫 머리에 이렇게 썼다. 산에 올라 정상까지 갔다. 천왕봉에 지어놓은 사당 안에 성모의 석상을 모셨는데, 왜구의 행패 때문에 목에 금이 갔다고 했다. 성모가 누구인가를 두고 하는 말을 시비하고, 선도성모(仙桃聖母)에 관한 신라의 전설을 옮겼다고 생각된다고 했다. 성모에게 빌면 비가 갠다는 말을 듣고 제문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그 뒤에 조식(曺植)도 지리산에 오르고 같은 제목의 글을 썼으나, 성모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왕봉까지 올라가지 않아 성모상을 보지 못한 것도 이유가 되지만, 허황되다고 여긴 이야기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함부로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스스로 관찰하고 판단한 사실만 기록에 남기려고 했다.

지리산은 세상에서 벗어나서 숨는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김종직은 지리산이 무릉도원(武陵桃源)보다 못할 것이 없는 곳이라고 했다. 조식은 청학동(靑鶴洞)을 세 번이나 찾았으나 속세의 인연을 다 떨치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고서도, 그런 곳에 들어가 숨어버리는 것이 온당하다고 하지 않았다.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을 예견하고 처자식을 이끌고 지리산에 들어가 숨은 사람의 전례를 들고, 은거하는 것이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망하려는 형세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리산은 괴로운 삶의 터전이라고 김종직은 한 차례 말했다. 가을이면 잣을 따서 나라에 바쳐야 하는 것이 큰 고통이라고 했다. 그러나 백성들이 수탈을 피하는 데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 지리산이 "용열한 사람, 도망친 종, 신분을 숨긴 자, 불법을 배우는 자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조식은 백성이 당하는 수탈에 대해서 김종직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마음 아파했다.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부역을 줄여달라고 지방 수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달라고 승려가 부탁해 그렇게 했다고 하고서,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정사는 번거롭고 세금은 과중하니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져 아버지와 자식이 함께 살지 못하고 있다. 조정에서 바야흐로 이를 염려하고 있는데 우리들은 그 등 뒤에서 나 몰라라 하면서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이것이 어찌 진정한 즐거움이겠는가?"

김종직은 산이 숭고하고도 빼어나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만한 곳이라고 하고, 시를 지어 "고랑뇌정투(高浪雷霆鬪) 신봉일월마(神峰日月磨) 고담여신우(高談與神宇) 소득과여하(所得果如何)"라고 했다. "높은 물결에서 우뢰와 벼락 다투고, 신령스러운 봉우리가 해와 달을 연마하는데, 고담준론을 일삼으며 절간이나 지어 얻는 바가 과연 무엇인가?"라고 하는 뜻이다. 말을 크게 하고 절간을 야단스럽게 짓는다고 해서 크고 우람한 이치에 미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오악진중원(五嶽鎭中原)중원을 진압하는 오악을

동대중소종(東垈衆所宗)동쪽 산도 모두 우러른다지만,

기지발해외(豈知渤?外)어찌 알았으랴, 발해 밖에

내유두류웅(乃有頭流雄)웅장한 두류산이 있음을.

곤륜만만고(崑崙萬萬古)곤륜산이 생긴 만만년 옛적에는

지축동서통(地軸東西通)지축이 동서로 통했구나.

알유체수미(斡維?首尾수미를 돌리고 끌어당긴

상상조화공(想像造化功) 조화의 공교로움 상상하겠노라.

김종직의 시 '천왕봉에 올라서'(登天王峯)이다. 지리산을 두고 지은 많은 시 가운데 가장 빼어나다고 할 수 있다. 이것과 나란히 놓을 수 있는 조식의 시는 다음의 '덕산 계울 정자 기둥에 쓴다'(題德山溪亭柱)이다.

청간천석종(請看千石鍾)천 석 들이 종을 보게나 !

비대고무성(非大叩無聲)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 없다네.

쟁사두류산(爭似頭流山)어떻게 하면 두류산처럼

천명유불명(天鳴猶不鳴)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

두 사람 다 지리산이 큰 산이라고 했다. 큰 산이 어떤 산인가에 관해서는 의견이 달랐다. 김종직은 지리산의 크기를 중국의 오악에다 견주어, 중국의 오악만 대단하다고 하면서 조선의 산은 모두 오악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고, 지리산은 오악과 대등하며, 천지가 창조될 때 함께 이루어졌다고 했다. 조식은 지리산이 큰 산임을 하늘과 관련시켜 말하면서, 하늘이 울어도 지리산은 울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말한 데는 각기 이면적인 의미가 있다. 김종직은 중국만 대단하다고 여기는 편향된 사고가 마땅하지 않고, 조선 또한 그 자체로 중심을 이루고 있어 중국과 대등하다고 하려고 지리산을 들었다. 조식은 지리산에다 견주어 스스로 중심을 잡고 있는 큰 선비의 자세를 말했다.

지리산은 큰 종과 같아 크게 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고, 지리산은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다고 했다. 두 말이 서로 다른 것은 앞에서는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을, 뒤에서는 바람직한 이상을 말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이 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충격이다. 그런데도 울지 않은 지리산은 으뜸가는 선비이다. 심지가 굳고 처신이 발라 어떤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갖추고자 해서 그런 시를 지었다.

두 분의 시는 조선전기의 사대부가 추구하던 이념의 양면성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김종직이 조선은 그 자체로 중심을 이루어 중국과 대등하다고 한 것은 중세보편주의의 독자적인 구현을 추구한 노선이다. 조식은 그렇게 하려면 어떤 정신을 갖추어야 하는지 말했다. 김종직이 서론을 편 데 이어서 조식이 본론을 마련했다고 보면 둘이 연결된다. 김종직의 지리산은 가서 보면 되는 대상이며, 완성되어 있는 형태이다. 조식의 지리산은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찾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미완성이다. 지리산을 두고 지은 조식의 다른 시들은 그 과정의 일부 또는 어느 측면을 말해준다.

'덕산에 머물 곳 정하고서'(德山卜居)라고 한 것을 한 편 더 들어보자. 지리산 자락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사리 덕산 마을에 산천재(山川齋)라는 서실을 짓고 들어앉았을 때 지은 시이다. 다시 다진 마음가짐을 나타냈다.

춘산저처무방초(春山底處無芳草)봄 산 어딘들 향기로운 풀 없으리오만,

지애천왕근제거(只愛天王近帝居)하늘나라 가까운 천왕봉만 사랑하노라.

백수귀래하물식(白手歸來何物食)맨손으로 돌아와 무엇을 먹겠느나?

은하십리끽유여(銀河十里喫有餘)은하수 십리나 되어 마셔도 남도다.

무엇을 말하는지 언뜻 알아낼 수 없는 말로 만만치 않은 생각을 나타냈다. 봄 산의 향기로운 풀이라고 한 것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자연의 혜택이다. 자연의 혜택은 말하지 않고 임금의 은혜를 드는 것은 잘못이다. 자연의 혜택은 어디든지 있어 사람이 살아나갈 수 있다. 살기만 하면 된다고 한 것은 아니다. 천왕봉은 바라보면서 높은 이상, 굳건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최상의 삶이다.

앞의 두 줄이 그런 뜻이라면, 뒤의 두 줄은 무엇을 말하는가? 첫 줄을 셋째 줄로, 둘째 줄을 넷째 줄로 받아,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분명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향기로운 풀이 어디든지 있다는 것은 맨손으로 돌아와 무엇을 먹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대답이다. 천왕봉이 주는 것은 은하수 십리나 뻗었다고 하는 폭포 또는 냇물처럼 풍성하다. 자칫 하면 패배자가 될 수 있는 삶을 거룩하게 하는 정신적 각성을 얻었다.

나아가서 세상을 바로잡을 의지가 부족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국왕이 어진 이를 좋아하는 것 같은 거동만 보이지 말고 나아가서 뜻을 펼 수 있게 하라고 촉구했다. 부름에 응하지 않는 이유를 밝힌 상소의 언사가 불손하다는 말을 듣기까지 했는데, 은거를 합리화하는 명분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진출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다.

물러나 있으면서 마음을 바르게 하는 도리를 온전하게 밝혔다고 자부한 것도 아니다. 목표를 너무 크게 잡아 성사가 빈약하다고 스스로 시인했다. 이황(李滉)은 명주를 한 필 다 짜서 그런대로 쓰지만, 자기는 비단을 짜려고 하다가 말아 아쉽다고 했다. 미완성이 새로운 탐구의 과제를 준다.

조동일 계명대 석좌교수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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