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을 다시 찾는다. 이번엔 퇴계의 흔적을 따라서다. 안동엔 아직까지 선비들의 전통문화가 오롯이 남아있다. 물론 그 중심은 퇴계다. 안동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40곳이 넘는 서원과 서당, 수많은 고택들조차 퇴계의 흔적들이다. 안동의 유교문화는 퇴계와 그의 제자들이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안동에 가면 꼿꼿한 선비정신을 느낄 수 있다.
퇴계의 흔적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은 도산면이다. 온혜리에는 퇴계가 태어난 퇴계태실이, 토계리엔 퇴계가 머물렀던 퇴계종택이, 하계리엔 퇴계묘소가 있다. 원천리에 있는 이육사문학관도 퇴계와 관련이 있다. 육사는 퇴계의 14대손. 강직한 저항성으로 알려진 그의 문학적 기질도 퇴계학통에서 나왔다.
퇴계의 흔적 더듬기는 왕모산성에서 마무리한다. 왕모산성에 오르면 멀리 퇴계오솔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퇴계오솔길은 퇴계가 마음에 두고 자주 찾았던 봉화 청량산 가는 길. 퇴계는 청량산 오산당에서 숙부인 송재 이우 선생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하지만 퇴계오솔길은 다음 안동여행을 위해 남겨뒀다. 퇴계오솔길은 하루 왼종일 시간을 내 조용하게 오가며 퇴계를 느껴볼 만하기 때문이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의 '절정'이라는 시다. 육사는 일제 치하의 가혹한 현실과 항일 저항정신을 담은 이 시의 시상을 왕모산 칼선대(갈선대라고도 부르는 벼랑 꼭대기) 위에서 떠올렸다.
육사의 시 '절정'을 읊조리며 칼선대를 찾아 왕모산을 오른다. 출발지는 왕모산과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단천리. 왕모산성 등산로 표지판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완만하게 오르던 등산로는 왕모산성 부근에서 급경사 계단으로 바뀐다. 걱정할 건 없다. 왕모산성까지는 불과 0.6㎞. 이후엔 이런 급경사 오르막은 없다. 가파를 계단 끝에서 숨고르기를 하며 뒤돌아보면 저 멀리 농암종택이 있는 가송참살이마을이 보인다. 낙동강을 지나는 단천교에서 강을 따라 퇴계오솔길이 이어져있다.
왕모산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왔을 때 왕의 어머니가 이 산으로 피난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왕모산성 표지판을 지나 산능선에 있는 왕모당이 이 사실을 입증해준다. 왕모당은 공민왕의 어머니를 신으로 모신 성황당. 매년 정월 보름이면 마을 주민들이 당제를 올린다. 당제를 올릴 때 사용한듯한 금줄이 아직 둘러쳐져있다.
칼선대는 왕모당에서 가깝다. 등산로를 따라 내리막 길을 내려갔다가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면 바로 나타난다. 깎아지른 기암절벽 위에 서면 아찔하다. 이곳에서 육사는 '절정'이라는 시를 떠올렸다. 나뭇가지에 시 '절정'을 걸어뒀다.
발아래로는 낙동강이 태극무늬로 휘돌아 흐르는 진풍경이다. 도산면 원천리 내실미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모습이 평화롭다. 워낙 탁 트인 풍경이라 펼쳐지는 장관을 한눈에 담기는 어렵다.
이곳까지는 40여분의 간단한 산행. 정상인 두리봉을 거쳐오는 등산코스도 괜찮다. 전체적으로는 6.8㎞에 3시간30분이 소요된다.
글.사진 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찾아가는 길=안동에서 '도산서원' 이정표를 따라 간다. 봉화 청량산으로 가는 35번 국도다. 와룡면을 지나면 도산서원. 안동시내에서 도산서원까지는 승용차로 40여분 걸린다. 도산면사무소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한다. 도로가 매우 좁다. 하지만 200여m만 가면 도로는 다시 2차로로 넓어진다. 삼거리서 퇴계종택까지는 2.6㎞. 다시 3.7㎞를 가면 이육사문학관이다. 오던 길을 따라 1.9㎞를 더 가면 오른쪽에 작은 가게인 왕모산성휴게소가 나타난다. 휴게소를 끼고 우회전하면 이내 폐교를 활용한 도산청소년수련원이 나타나고 약 1㎞를 가면 왼쪽에 왕모산성등산로 표지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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