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이번 달 대법원 결심공판에서 김우중 전대우그룹 회장에게 분식회계 및 사기 대출, 불법외환거래죄 등을 적용해서 징역 15년과 23조여원의 추징금을 구형했다.
경제관련 사범으로는 사상 최장의 징역이고, 최대의 추징금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일이다. 한국의 '징기스칸'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를 호령하던 기업인의 종말이 이렇게 비참해질 수도 있다는 면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필자는 이번 공판이 징역기간, 추징금 규모 등의 수치나 한 사람의 인생반전(反轉)이라는 측면 못지 않게 한국금융위기에 대한 최종법적판단이라는 측면에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검찰의 인식은 금융위기 이후 우리사회를 지배했던 구조조정론자들의 견해와 축을 함께 한다. "40조원 분식회계를 통한 10조원 사기대출"이 이에 해당되는 항목이다. 기업들이 숨겨놓았던 부실이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으로 실현됐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으니까 해당기업인들이 추징금을 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40조원 분식회계는 대우가 망했을 때, 즉 기업의 '청산가치'를 기준으로 내린 결론이다. 대우그룹 몰락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대우자동차의 경우를 보자. 1999년 6월 대우가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직전 대우차의 장부상 자산가치는 20조6천억원이었다.
그러나 워크아웃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정부가 회계법인을 동원해서 보수적으로 실사했을 때에는 12조9천억원으로 가치가 떨어졌다. 그 후 대우차는 제너럴모터스(GM)에 5천억원도 되지 않는 돈에 넘겨졌다. 그나마 부실채권은 국내채권은행단이 떠안고 2조원이 넘는 대규모 금융지원까지 해준다는 조건이었다.
김우중 회장을 비롯한 대우 관계자들이 대우차 가치가 5천억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20조원여로 부풀려서 돈을 빌렸다면 물론 사기죄가 성립한다. 그러나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계속기업(going concern)'으로 생각한다. 기업이 죽었을 때의 가치가 아니라 살았을 때의 가치를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계속기업가치와 청산가치 사이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난다. 한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는 그의 역량이나 사회적 네트워크 등을 고려해서 높은 가치를 받을 수 있지만, 죽은 다음에 장기(臟器)를 떼어내서 팔면 아무리 건강했던 사람이라도 몇푼 건지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기업이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그 가치를 믿으면서 돈을 빌려달라고 한 일을 기업이 망한 뒤 사기로 규정하면 기업이 어려워졌을 때에 돈빌리러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사기꾼으로 취급해야 한다.
금융기관들 또한 통상 계속기업으로 상정하고 돈을 빌려준다. 국내외에 내로라 하는 금융기관들이 정말 100% 속아서 대우에 돈을 빌려줬다고 할 수 있는가. 대우의 저력과 가능성에 대해 나름대로 믿는 바가 있으니까 돈을 빌려줬을 것이다. 그런데 부실채권이 발생하니까 모두 대우잘못으로 돌렸다. 대규모 부실채권이 발생했는데 금융기관은 '속은 죄' 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워크아웃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대우계열사들이 되살아났다는 사실이다. 현재 생존해있는 대우계열사들의 주식가치는 35조원 가량에 달한다고 한다. 김우중 회장에 대한 판결에 청산가치를 적용하는 논리대로라면 대우가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때에는 계열사들이 가치가 거의 없어졌고 워크아웃 프로그램 덕분에, 즉 정부와 채권금융단이 잘 한 덕분에 35조원에 해당하는 기업가치가 새로 생겨났다고 봐야 한다. 과거 대우그룹 관계자들이 35조원의 가치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일까.
필자가 보기에 한국의 금융위기에는 정부, 금융기관, 기업들이 모두 책임이 있다. 국민경제내에서 각자의 역할을 보자면 기업은 위험을 부담하면서 투자를 벌이는 집단이고 정부나 금융기관들은 이러한 위험을 관리하는 집단이다. 금융위기가 벌어졌다면 금융위험 관리자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벌어진 뒤 우리사회에는 이상하게 재벌주범론(主犯論)이 득세했다. 법조계의 판단도 대체로 이를 따르는 것 같다. 잘못 쓰여진 역사를 법조계에서 공인해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학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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