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농사 절반이 냉해 피해"

입력 2006-05-18 09:56:00

…농민들 '한숨'

17일 오후 달성군 하빈면 기곡리. 높푸른 하늘과 화창한 날씨가 전원을 휘감고 있었지만 포도재배농가가 대부분인 이 마을에는 온통 먹구름 투성이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20여ha 포도밭엔 인적은 없고 정적만 감돌았다.

이맘 때쯤이면 포도나무에 새순이 돋아 초록색 잎사귀로 뒤덮이면서 덩달아 농민들도 한창 바쁠 때일 텐데. 고개를 갸웃하며 포도밭에 들어가 보니 발끝에선 먼지만 풀풀 날렸다. 특히 뼈대만 앙상한 포도나무는 사막에 홀로 서있는 선인장이 연상될 정도였다. 지난 겨울부터 시작된 가뭄이 봄까지 이어진 탓이다. 게다가 기온차가 심했던 날씨도 포도나무를 고사위기로 몰아넣었다.

마을 회관에 당도하고서야 밭에서 사라졌던 농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회관 입구에 쪼그리고 앉은 서너 명의 농민들은 "무심한 날씨 때문에 올 한해 농사를 다 날리게 됐다."며 담배연기만 연신 내뿜었다.

30년 동안 포도농사를 짓고 있다는 이인석(60) 씨는 "잡풀이 올라오지 못하게 하고 수분을 조금이나마 보관하려고 그 넓은 밭에 전부 비닐을 깔며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달 말쯤부터 새순이 돋고 잎이 맺혀야 하는데, 올해는 조금 늦어지나 했지요. 그런데 열흘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니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더군요." 이 씨는 4천여 평의 포도밭 중 40%가량을 못쓰게 됐다고 했다.

이 씨 옆에 앉아 있는 김종구(58) 씨는 더욱 피해가 심했다. 김 씨는 올 한해 농사를 완전히 망치게 될 판이라는 것. "밭 700여 평에 심어놓은 350여 그루의 포도나무 중 그나마 살아남은 것은 한 손에 꼽을 정도에요. 20여 년을 포도와 함께 살았지만 이처럼 심한 경우는 난생 처음 겪습니다.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포도나무를 쳐다보기도 싫더군요."

그는 "2, 3개 월만 있으면 포도를 수확한다는 기쁨에 힘든 것도 잊어버릴 때인데 아무것도 할 게 없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지난 해는 포도를 수확해 500만 원 가량을 남겼는데 올해는 빈털터리가 됐다."고 한탄했다.

달성군에 따르면 17일 현재 이 마을 60가구 포도재배농가 중 절반이 넘는 35가구의 농가가 동해피해를 입었다. 4ha(1만2천여 평)의 포도밭이 못쓰게 된 것. 달성군농업기술센터 김정현 과수특작팀장은 "지난 겨울 유난히 가뭄이 심했던 데다 일교차가 심한 들쭉날쭉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수분과 기후변화에 민감한 포도나무들이 대규모로 고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기곡리 마을 주민들에게는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려 포도가 익어 가는 칠월'을 올해는 볼 수 없게 됐다.

달성군은 동해 피해의 정확한 원인과 피해규모를 조사하는 한편 피해농가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달성군 김원섭 원예농업담당은 "우리 지역은 물론 경산과 영천의 포도재배농가들도 이번에 큰 피해를 입어 농림부에 지원을 요청했다."며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기상이변이 농작물의 피해를 유발하고 있어 예방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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