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농촌체험] 군위 황청리 녹색농촌체험마을

입력 2006-05-18 08:30:27

온 들판을 하얗게 색칠했던 사과꽃은 보이지않는다. 아마도 며칠 전 몰아친 비바람에 떨어졌으리라. 하지만 농부의 손은 쉬지않는다. 계절은 아직 봄이지만 벌써 풍성한 가을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그만 가위를 쥔 꼬마들은 행여 가지가 다칠세라 조심조심 조그만 열매들을 솎아낸다. "엄마, 이렇게 작은 게 사과야? 그런데 왜 잘라버리는 거야?" "모두들 그냥 놔둬도 익겠지만 품질 좋은 사과를 만들기위해선 어쩔 수 없단다."

사과 솎아내기는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400평쯤 되는 과수원만 해도 혼자서는 닷새나 걸린다. 윤영미 씨는 "평소에 그냥 사다 먹기만 했는데 직접 해보니까 농민들이 얼마나 고생하는 지 알게 됐다."라며 "우리 농산물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모두들 사과나무에 매달려 있는 동안 안진녕(8) 군은 청개구리를 잡았다. 책에서나 보던 청개구리를 만져보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촌두부 만들기 체험이 준비됐으니 가위를 반납하라는 소리도 들리지않는가보다. 박태인(5) 군은 그새 울음을 터트리며 마을 홍지호(66)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개구리 잡아달라며 떼를 쓴다.

두부체험은 아쉽게도 실패작이다. 단단한 두부 대신 순두부가 되어버렸지만 체험객들은 군침을 삼키며 젓가락질을 서두른다. 시원한 원두막에 앉아 김치 한 조각이랑 먹는 그 맛이란!

아이들은 어느새 텃밭으로 몰려가 불쑥불쑥 올라온 야채(?)를 뽑느라 여념이 없다. 물론 진짜 채소도 있지만. 그래도 마을 어르신들은 친손자 같은 꼬마들에게 여유롭기만 하다. "허허, 이 녀석들 오늘 밥값은 했네 그려." 울던 태인이도 개구리 대신 달팽이를 잡아 얼굴이 환해진다.

저녁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마을회관 마당에서는 굴렁쇠 굴리기대회가 벌어진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젊은 엄마 아빠에겐 어렵기만 하다. 굴렁쇠가 굴러가는지 사람이 굴러가는지...... 아이들에게 가르쳐준다며 나섰다가 어른끼리 신이 났다.

참나무 장작으로 햇감자를 구워먹은 뒤 체험객들이 찾은 민박집에선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활짝 핀다. 마을 어르신들은 안방을 내어준 것도 모자라 과일이랑 감주까지 내놓는다. 그래, 산다는 게 이런 재미 아닐까? 팔공산 위에 휘영청 높이 뜬 보름달만큼 모두의 마음이 충만하다.

이튿날 아침 찾은 인근 한밤마을에서는 돌담길이 800년이나 됐다는 홍성원(50) 이장의 설명에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제2석굴암에서는 저마다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우리 가정이 항상 화목하고 건강하게 해주세요." "아빠가 용돈 많이 주게 해주세요."

이날의 하이라이트, '동산계곡 뗏목타기'는 온통 아이들 세상이다. 대나무와 스티로폼으로 만든, 조금은 엉성한 뗏목이지만 처음 해보는 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처음 옷 젖을까 조심조심하던 아이들은 아예 물 속으로 뛰어들고 걱정스런 모습이던 엄마들은 응원하기 바쁘다.

돌아오는 길, 농협 군위유통센터에서 친환경농산물 이력관리시스템과 유통현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뒤 체험객들의 표정에는 한 가지 생각뿐인 듯 하다. '우리 농촌에서 고생해서 만든 농산물을 우리가 사랑하지않으면 누가 사랑해주겠어.'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군위·이희대기자 hd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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