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아름다운 퇴장

입력 2006-05-16 08:44:56

조병화 씨의 '의자'는 아름다운 은퇴에 관한 노래이다. 유종의 미를 거두는 사람이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라 믿는다.

친구 중에, 군에 가 있는 3년 동안 애인이 변심하여 자기의 친한 친구와 결혼하게 되는 기막힌 사연이 있는 자가 있다. 이 친구가 고민을 거듭하더니, 휴가 나가서 옛 애인을 만나서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이병기 씨의 '낙화'라는 시를 선물하였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이렇게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집착하지 않고 되돌아서는 친구의 뒷모습은 정녕 아름다웠던 것임에 틀림이 없다.

또 다른 친구는 1천여 명의 성도를 돌보고 있는데 만나면 늘 이런 얘기를 한다. "나는 목사로서 성도에게 영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할 때가 곧 물러날 때라고 믿는다. 그때가 되면 목회를 그만두고 조그만 분식집을 하며 살아도 먹고는 살지 않겠나?" 그런데 이 친구가 요즈음은 2, 3년 안에 좋은 목회자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자기는 아내와 함께 조용한 도시에서 100여 명 정도 규모의 성도들과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목회지를 필자에게 구하여 달라니 부담은 되지만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 아는 지혜로운 친구라고 생각한다.

김옥길 여사가 이화여대 총장으로 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냈다. 주위에서는 당신이 필요하다며 간절히 말렸으나 선생은 사의를 굽히지 않았다. 훗날, 사석에서 조용히 누군가가 그 이유를 물었을 때 "언제부터인가 내게 바른 말을 해주는 사람이 미워지고 싫어지더란 말이야. 이거 큰일 아닌가. 비난이 아니라 비평을 하는 데도 싫다면 내가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이때가 물러나야 할 때구나 하고 그만 두었지."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밀려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침에는 연민만이 있을 뿐이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자는 언제나 아름답다.

용퇴와 명퇴를 하는 판에 유독 정치판에 오면 은퇴가 없다는 느낌을 갖는다. 나라와 민족에 해가 되는 정치인이라면 "당신은 퇴장해야할 때가 벌써 지났습니다."라고 호루라기를 불어주고 싶지만, 과연 그것이 씨알이라도 먹힐까 생각하니 정말 서글픈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이동관

대구수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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