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고민과 이해

입력 2006-05-15 07: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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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 추위가 유난스럽던 이른 봄 날, 한 중년 아주머니가 어두운 옷차림으로 머뭇거리며 진료실 문을 들어섰다. "어떻게 오셨나요?"라는 물음에, "그게, 저..., 가슴이 너무 커서....'

남들은 가슴이 작아서 고민인데, 이 아주머니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너무도 큰 가슴이 차라리 원망스럽다는 것이었다. 옷을 고를 때도 자기 치수 보다 두 세 치수 큰 옷을 골라야 하고, 여름에 는 가슴 아래에 땀이 차서 습진이 생기기 일쑤라고 했다.

무거운 가슴 때문에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는 등 말 못할 고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가슴을 줄일 수 있는 어떠한 시도도 못했다고 한다. 남들이 이상하게 볼 것 같아서 더더욱 말도 못한채 죄 아닌 죄책감에 눌려 살아온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잣대로 남들을 평가하고 판단하기 십상이다. 스스로 겪어보지 못하고서는 남의 고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수술 후 화사한 봄날같은 옷을 차려입고 경과를 보러온 아주머니의 표정은 너무도 밝았다.

움츠렸던 가슴도 펴지고 표정도 밝아졌다. 까닭없이 지니고 살았던 죄책감도 말끔히 사라졌다.

돌이켜보면 아직도 우리는 문화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

성형을 했다면 먼저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선입관이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서 살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특히 환자의 고통을 치료하는 성형 수술에 대해서 조차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욱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다양성을 요구하고 있다. 어떤 것도 하나의 열쇠로 풀 수 없는 사회인데도 아직까지 과거의 인식 기준으로 현재의 모든 일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다른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꼭 성형수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다 잘못된 것으로 여기는 경직된 사고방식을 버려야 더욱 밝은 사회를 이루어지지 않을까.

화사한 꽃들이 피고지는 봄날. 몇차례의 봄비를 맞으며 겨우내 움츠렸던 모든 산과 들이 어깨를 털고 완연한 생기를 되찾았다. 올 봄 우리 사회는 다가온 지방선거로 유난히 분주하다. 선거 때만 되면 출마자들은 지역 주민들의 고민을 모두 다 해결해 줄 것처럼 떠들어댄다.

선거 때가 아니더라도 늘 서로에게 작은 관심이라도 가지고, 서로 도우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사회란 상대방의 작은 고민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박재우(경북대 성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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