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가지 표정' 야구경기장 관중석 풍경

입력 2006-05-13 07:46:56

경기를 보기위해 야구장을 찾는다? 그렇다면 야구장에서 반만 즐긴 것이 된다. 치어리더들의 화려한 몸짓과 한마음으로 터트리는 응원 함성이 빠지면 야구장은 '앙꼬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다. 거기에다 독특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난 2일 삼성과 SK와의 3차전이 열린 대구시민야구장 관중석 표정을 살폈다.

경기가 시작된 직후 3루쪽 관중석. 한 관중이 혼자서 무언가를 열심히 중얼거리고 있다. 야구중계 해설자가 따로 없다. "기다리라니까.""좌타자가 그 공을 어떻게 치냐.""실력이 안 되는걸 뭐. 아무리 천하의 박경완이라도 안 된다." 등등. '두부아저씨'로 통한다는 안태견(60)씨는 "응원 좋아하는 사람은 응원하고 내같이 이것저것 지시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주문한다."라며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 않는다. 프로야구 초창기인 1980년대 초부터 야구장을 찾은 그는 온갖 스포츠 신문은 다 챙겨보고 인터넷을 통해 야구 정보도 꼼꼼히 클릭한다. 이제는 웬만한 야구 전문가 못지않은 식견을 가지고 있단다.

내야석과 달리 썰렁한 외야석. 하지만 재미난 풍경은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펼쳐진다. 술을 한 잔 걸친 이성진(44·가명)씨가 우익수를 보는 이진영 SK선수에게 갑자기 소리친다. "진영아, 어무니 잘 있나." 그러자 이 선수는 무안한 표정을 지었고 주위에선 폭소가 터져 나온다. 일주일에 두세 차례 야구장을 찾는다는 이씨는 "부산에서 올스타전이 열릴 때 이 선수 어머니를 봤는데 정말 뒷바라지를 열심히 하더라."라며 우겼다. 다른 쪽에선 야구엔 전혀 관심없이 딴 짓(?)을 하는 청춘남녀가 보인다. 야구장에서 꼭 빠지지 않는 모습. 서로 한창 애정표현을 보이더니 경기 중간에 휑하니 관중석을 빠져나간다.

경기가 무르익자 치어리더들의 댄스도 더욱 열기를 더해간다. 치어리더 바로 앞좌석에서 유독 열광하는 학생들. 이들은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다. 6, 7명인 이들은 지난해부터 무대 앞좌석을 고정적으로 차지하며 치어리더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보내는 열렬팬이다. 한 번씩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내면 치어리더들이 멋적은 미소를 짓기도 한단다. 이상욱(18.ㄷ고 3년)군은 "얼마 전에는 치어리더 싸이월드 홈피를 알아내 일촌 신청을 했다가 한방에 거절당했다."며 아쉬워했다.

5회가 끝나고 경기장을 정리하는 클리닝 타임이 되면 대구야구장은 쑬렁댄다. 대구야구장에서 처음 시작된 키스 타임. 전광판에 한 중년부부가 나타난다. 관중석에서 "키스, 키스"라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자 머뭇거리던 김동운(45)씨가 과감히 키스를 시도한다. 부인이 줄기차게 거절하지만 기어코 성공. 김씨는 "결혼한 지 23년이 지났지만 오늘은 마치 연예할 때로 돌아간 듯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시끌벅적해진 관중석에서 특히 한눈에 들어오는 인물이 있다. 삼성 선수 복장을 한 최갑식(43)씨. 그는 1988년부터 거의 매일 경기장을 들락거린 대구야구장 터줏대감이다. 최씨는 "원래 강동우의 열렬한 팬이었는데 지금은 그가 두산으로 트레이드된 바람에 박진만 선수 복장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치어리더 7년째인 노숙희(25·여)씨는 "응원을 하다보면 술에 취해 무대에 무작정 올라와 춤을 추거나 심지어 바지를 벗는 사람 등 추태를 부리는 사람도 가끔 있다."고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제각각 튀는 관중들 덕분에 야구장이 더욱 신명 나는 공간이 된다고 덧붙였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정재호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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