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각하, 현재의 세계 정세에 행복하십니까."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지난 8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물었다. 그리고 "선량한 사람들의 피가 얼마나 더 길거리에 뿌려져야 하는가"라고 탄식했다.
페르시아어로 쓰인 18쪽의 이 친서 내용이 영어로 번역돼 모두 공개됐다.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미국의 이익대표부 역할을 하고 있는 테헤란 주재 스위스 대사관을 통해 미국에 편지를 보냈다. 이란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 친서를 보낸 것은 1979년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 사건 이후 27년만이다.
친서는 "미국의 대통령인 미스터 조지 부시께" 보내는 글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시작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력이 있는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학생들이 자신에게 이런저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식으로 자신이 미국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여러가지 현안에 대한 질문이 골자를 이룬다.
먼저 그는 이라크 전쟁에 대해 따졌다. "대량살상무기(WMD)가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한나라가 점령되고, 10만명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WMD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거짓말로 점철된 잘못된 전쟁이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그는 사담 후세인을 "잔인한 독재자(murderous dictator)"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은 후세인 제거를 겨냥한 것이 아니"었으며 독재자가 물러난 뒤 이라크 국민들도 "그 누구도 기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담 후세인이 과거 이란에 대해 전쟁을 했을 때는 서방은 후세인을 지지했다"고 과거를 들춰냈다.
그는 또 "미국에 대한 세계의 증오가 전에 없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관타나모 수용소나 유럽에 있다는 비밀감옥에 대해 언급하면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미국의 아픈 곳을 꼬집었다.
나아가 이스라엘 건국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도 던졌다. "600만명이 되는 많은 유대인이 학살됐다. 역사의 사실이다..그렇다고 중동에 유대인의 나라가 세워져야 하는가. 그리고 이 나라를 지지해야 하는가"라며 합리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편지 곳곳에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서방의 기독교도를 의식한 듯 예수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그에게 신의 가호가(Peace Be Upon Him)"를 반드시 추가했다. 그러면서 "예수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들었다...과연 신들은 그런 행동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고 물었다.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중동에서 이뤄지는 과학적 성과를 왜 시온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보는가"라고 따지면서 "무기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연구.개발 전체를 금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일 그런 가정(무기화 가능성)이 사실이라면 물리학이나 화학, 수학, 의료술, 공학 등 모든 것도 반대돼야한다"고 지적했다.
이란의 핵개발에 대해 서방이 극구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란의 핵 개발 관련 내용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미국의 독단을 비난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란의 권리를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거짓말로 점철된 이라크 전쟁의 결과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지적했다.
9.11테러로 많은 희생자를 낸데 대해 그는 부시 대통령에게 위로를 보냈다. 하지만 이후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한다며 세계를 위협하는 것을 비난했다. "왜 테러에서 살아남은 자들과 미국 국민의 정신적 피해를 치료하려 하지 않고 서방 매체들은 두려움과 불안의 분위기만 조장하는가"라고 물었다. 새로운 테러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미국민에 대한 서비스인가"라고 따졌다.
그는 이어 "이라크 전쟁에 투입한 돈을 가난을 해결하는데 썼다면 세계는 물론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입지가 훨씬 좋아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계는 얼마나 더 이상 이런 상황을 견뎌내야 하는가" "이런 흐름이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선량한 사람들의 피가 얼마나 더 길거리에 뿌려져야 하는가"라고 따져물었다. 세상의 많은 기독교들, 이슬람 교도들이 서로 존중하고 각자의 믿는 신을 섬기며 살아갈 수 없는지, 코란을 언급하면서 고민하는 모습도 보였다.
마지막으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종교에 대한 초청'을 했다. "이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가. 그것은 선지자들의 가르침으로 진정으로 회귀하는 것이다"고 권고했다.
부시 대통령이 강조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도 빠지지 않았다. "자유주의와 서구식 민주주의는 인류의 이상 실현을 방해해 왔다"거나 "통찰력 있는 자들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의 편지에 대해 골람_후세인 엘람 이란 정부 대변인은 "현재의 긴박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역사와 철학, 종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푸는 돌파구가 될만한 것은 찾을 수 없었다"고 평가절하했다. "핵문제를 풀기 위한 진지한 제안이 담겨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편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 보낸 친서에 이어 다른 나라의 정상들에게도 조만간 편지를 보낼 것이라고 이란 정부 관리들이 밝혀 또다른 '편지공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뉴욕로이터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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