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되레 잡을 뻔한 '국민방독면'

입력 2006-05-09 11:35:46

방독면은 유독 가스나 화생방 위험으로부터 인명을 보호하는 장구다. 독가스가 퍼지는 한계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할 유일한 방편이다. 그런 방독면이 불량품으로 제구실을 못한다면 목숨을 건질 가능성이 없다. 정부가 국민에게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구명줄로 믿고 쓰라며 보급한 '국민방독면'이 그런 불량품이라면 어떻겠는가.

말도 안 되는 일이 버젓이, 태연하게 벌어져 있다. 2002년 9월 이전에 생산 보급된 국민방독면 41만 3천617개 전량이 불량품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전국 시군구청, 읍면동사무소, 민방위대원, 지하철역 등에 공급된 116만 4천892개의 국민방독면 중 35%에 해당한다. 소방방재청이 한국표준과학원에 의뢰해서 성능 검사를 한 결과 국민방독면의 정화통이 불량해서 화재 시 착용하면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국민방독면의 문제점은 지난 2003년 국정감사에서 이미 제기됐었다. 또 2004년 1월 경찰청이 수사에 나서 제조업체의 불량품 납품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당시 제조업자와 금품을 받은 국회의원 보좌관, 조달청 직원이 처벌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년이 지나서야 이 같은 놀라운 사실을 발표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지하철 화재 참사 때 지옥 같은 상황에 갇힌 사람들의 절규를 생각해 보라. 그때 제대로 된 방독면만 있었더라면 희생자는 크게 줄었을 것이다. 비상사태는 오늘도 발생할 수 있다. 불량 방독면을 두고 그렇게 무사안일할 수 있는가. 소방방재청이 사과를 했다지만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니다. 직무 태만과 독직이 부른 불량 국민방독면과 불량 조치는 정부의 불량을 떠올리게 한다. 관련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과 함께 신속한 보완 대책을 촉구한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