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한국사람 대접" 첫 투표 설레이는 당소경 씨

입력 2006-05-09 10:05:20

"이제야 대한민국 사람으로 대접받는 것 같네요."

당소경(50·대구 중구 수동) 씨는 태어나 처음 오는 31일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국내 공직선거 사상 최초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외국인 투표권 행사가 가능(영주 체류 자격 취득 후 3년이 지난, 만 19세 이상)해진 것.

"투표권이 뭡니까. 1960년대엔 자기 이름으로 집이나 땅도 살 수 없었어요. 세금을 다 내고 영업을 했는데도 차별대우를 받았죠. 때문에 많은 화교(華僑)들이 짐을 싸 한국을 떠났습니다. 화교 고교를 졸업한 동기 80명 가운데 지금까지 대구에 남은 사람은 7명뿐입니다."

대구 약전골목에서 30년 넘게 중국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당 씨. 그는 약전골목이 고향인 화교 2세다. 중국 산둥성에서 가난을 피해 인천으로 온 아버지(당빈백·80)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대구로 피란, 동료 2명과 한의원을 열었고 당 씨 가족은 이때부터 대구에 터를 잡았다.

하지만 여러 차별로 그들은 언제나 이방인일 뿐이었다. 주민등록이 없어 인터넷 사이트 가입도 자유롭지 않고 장애인들에게 발급되는 장애우증, 노인들을 위한 경로우대증도 손에 쥘 수 없었다.

당 씨 역시 젊은 시절 요리사 자격증을 딴 뒤 미국으로 떠나려 했지만 어머니의 만류로 눌러 앉았다. 이 곳에서 중국 음식점을 운영하며 결혼, 아이들을 낳아 길렀다. 막둥이 아들은 종로초교 2년생.

"일부러 화교 소학교가 아니라 한국 학교에 보냈습니다. 한국 아이들과 어울려 자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이 아이가 사회에 발을 들여놓을 때쯤이면 차별대우도 훨씬 줄어있겠죠? 제가 마침내 투표권을 갖게된 것처럼 말이죠."

동생들을 만나러 대만에 일주일만 가 있어도 이곳이 그리워 좀이 쑤신다는 당 씨. 선거철만 되면 가게로 날아들던 선거 유인물들도 이번엔 귀찮지 않다. 아내가 누구를 찍을 건지 물어봐도 비밀이라며 입을 닫는다. 내 손으로 대구시장과 중구청장, 지방의원을 뽑는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감출 수 없단다.

"한글을 잘 모르는 주위 어른들도 꼭 투표장에 가시겠답니다. 아직 누굴 찍을지는 고민 중이지만 선거 당일 부모님 모시고 투표장엘 갈 겁니다. '고향'을 가꿔나갈 일꾼을 뽑는 소중한 권리를 이제야 갖게 됐는데 당연히 행사해야죠."

한편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 2일 예비 선거인명부 작성 결과,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189만 2천440명. 이 가운데 외국인은 모두 261명이다. 대부분 화교 출신들.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1만 4천530명) 중 약 1.8%가 이번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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