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수 칼럼] '바티칸 코드'와 '다빈치 코드'

입력 2006-05-09 07:17:02

우리는 사실(事實)의 산물인 '논픽션'보다는 가상과 상상력이 빚어내는 '픽션'에 끌리곤 한다. 사실을 기록한 논픽션의 감동에 비해 있을 법하거나 있을 수 없지만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가상현실에 새로운 상상의 날개를 달아 더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인 바이런이 '사실은 언제나 소설보다 기이하다'고 한 말은 맞기도 하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중진 소설가 박완서 씨의 등단에 읽힌 이야기는 논픽션과 픽션의 이 같은 차이를 방증한다. 오래 전 본인에게 직접 들은 얘기다. 어느 날 덕수궁을 지나다가 6'25 한국전쟁 무렵 미군부대에서 함께 일했던 화가 박수근의 회고전이 열리는 걸 보고 당시 기억의 창고를 열어 쓴 장편소설이 '나목(裸木)'이다. 하지만 원래 논픽션(수기)로 씌어졌다가 재미있게 꾸민 이야기를 보탠 픽션으로 재구성했다. 그래서 그를 소설가로 부각시키는 노릇을 했다. '나목'은 그의 등단작이자 출세작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논픽션 천국'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사실과 진실을 바라보는 냉정과 온유와 절제의 미덕이 두드러지는 논픽션이 큰 대접을 받는다. 유명 출판저작상은 물론 퓰리처상에까지 이 부문이 있고,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낳았으며, 여전히 낳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이보다는 격정적인 형식인 픽션이 주는 감명은 농도가 더 짙게 마련이다.

지난 2002년 댄 브라운이 쓴 소설 '다빈치 코드'가 전 세계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출판 기적'을 이룬 이후 최근엔 영화화로 이어져 더 큰 파장과 논란을 부르고 있다. 톰 행크스와 오드리 토투가 주연을 맡고, 론 하워드 감독이 연출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다빈치 코드'는 격렬한 바티칸의 저지와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봄부터 촬영돼 근래에 작업이 마무리 된 모양이다. 이런 사정 탓으로 시사회 없이 올해 '칸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오는 17일 선보인 다음 18일엔 전 세계에서 동시 개봉될 움직임이다.

'다빈치 코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고, 자녀를 두었다는 가정에서 나왔다. 여전히 그 후손들이 유럽 어딘가에 살고 있으며, 이들을 지키려는 시온 수도회와 감춰진 진실을 은폐하려는 비밀결사대 오푸스데이의 목숨마저 앗아가는 갈등을 그리고 있는 기상천외(奇想天外)의 픽션이다.

소설로 이미 엄청난 돈을 벌었겠지만, 영화 제작에 1억 2천500만 달러를 들였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의 국내 개봉에 따른 순수 광고비만도 30억 원이나 책정됐다는 소문이 돈다. 말하자면 '진실 뒤집기'의 선풍과 대대적인 물량 공세로 돈을 벌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는 셈이다.

반면 '바티칸 코드'는 "'다빈치 코드'를 사지도 읽지도 말라"다. 너무나 당연한 경고다. '읽고 보도록 둔다'는 여론 또한 바티칸을 향하고 있는 정황이어서 그야말로 예삿일이 아니다.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이 꾸민 이야기(픽션)는 사실로 받아들일 위험성이 없지 않아 문제다. 게다가 발상 자체에도 심각한 '저의'가 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얼마 전엔 예수의 열두 명 제자 가운데 배반한 가롯 유다가 예수의 요구에 따른 배반으로 기술된 '유다 복음'이 공개돼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유다 복음'은 하느님을 악마로 규정해 이단으로 몰린 영지주의(靈知主義)의 한 분파인 '카인파'가 1~2세기에 만든 것으로 유다를 영웅시하는 모양이나 허무맹랑하기 이를 데 없다.

오랜 세월의 흐름에도 영향력이 막대한 예수의 생애와 관련된 정통적 도그마가 곤욕을 치르는 형국이나, 이참에 '요란한 빈 수레'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경계돼야 한다. 사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실체와 진실을 직시해야 하고 떨쳐내야 할 '환상'이나 '거짓'이 얼마나 많은가. 더구나 독버섯처럼 현혹하는 빛깔들이 화려하고, 다분히 선동적이지 않은가.

진리(眞理)는 존재하는 것을 존재한다고 말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진리는 언제까지나 그 자체로 빛나야 한다. '진리의 왜곡'은 오래 갈 수 없겠지만, 세상을 어지럽히는 '유혹의 독버섯 코드' 같아 반드시 추방돼야만 하리라.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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