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와 경찰은 지난 4일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미군기지 확장이전 지역 안에 있는 대추분교에 대한 강제퇴거 작업과 철조망 설치 작업을 끝냈다. 이 과정에서 대추분교에서 시위 중이던 시민단체 회원과 학생, 주민 등 400여 명이 연행되고 100여 명이 부상하는 결과를 빚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정부의 행정대집행에 반대하는 시위대와 공권력이 물리적으로 충돌한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미군기지 평택 이전의 필요성과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 추진 과정의 정당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나타난 결과의 잘잘못을 파악할 수 있다.
▨ 사태의 원인과 경과
한국과 미국 정부가 평택을 주한미군의 중심기지로 합의하고 확장이전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다. 정부는 평택 팽성 쪽에 새로운 통합 미군기지 부지로 대추리와 도두리 일대 285만 평을 정하고 이 가운데 200만여 평은 소유자의 동의를 받아 매수했다. 그러나 나머지 74만 평은 강제로 수용했고, 주민 100여 명은 강제 수용을 거부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 여기에 시민사회단체와 학생, 노동자 등이 가세해 시위가 장기화하고 강제 진압이라는 파국까지 불렀다.
미군기지 평택 이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보수적인 언론들은 국익을 앞세운다. '미군기지 평택 이전은 안보·경제적으로 우리 국익과 직결된 중대한 국책사업이다. 이 사업은 미군으로부터 5167만 평을 반환받고 362만 평을 공여하는 한·미 합의의 일환이다. 특히 수도 서울에 외국군 기지가 더 이상 주둔해선 안 된다는 것은 '국민적 합의'였다. 게다가 우리의 안보환경도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북한과의 대치, 일본과의 갈등에다 미·일 동맹의 강화, 일·중 화해 움직임 등으로 자칫하면 동북아의 외톨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한·미 동맹의 강화가 요구되고 있고, 그 시금석이 바로 이 사업인 것이다.'(신문 사설)
그러나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약한 것은 사실이다. '아직까지 정부는 주한미군 재배치의 목적과 평택 미군기지의 구실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과연 한반도 전쟁 억지력인지, 아니면 동북아 유사사태에 개입할 미군의 전진기지인지 알 수 없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한국과 미국이 합의한 것을 보면 평택 미군기지의 구실은 후자에 가깝다. 그렇다면 평택기지는 한반도를 국제분쟁에 휩쓸려들게 하는 '인계철선' 구실을 하게 된다. 이런 논의가 민간 차원에서 널리 일고 있는데도, 군 당국은 함구한다. 오로지 땅값 문제만을 논의하자고 했다. 어떤 국민이 제 나라의 평화를 위협하는 용도에 쉽게 땅을 내줄 것인가?'(신문 사설)
▨ 파국의 책임은
대립하는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를 풀어내는 최고의 방법은 대화를 통한 합의다. 그러나 대화가 지연되면서 발생하는 손실이나 위험이 클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지는 판단하기 힘들다. 일단은 대화가 진전되지 않는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 책임을 묻는 방법이 물리력을 통한 강제 집행일 수 있느냐는 논의는 차후 문제다.
책임 소재에 대해 대부분 언론들은 반미 운동을 의도하는 외부 세력을 지목한다. '민노총의 선동은 미군기지 이전 반대운동이 주민 생존권 차원이 아니라 반미투쟁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 기지 이전 반대측에는 표면상 현지 주민과 범대위가 섞여 있지만 주도권은 완전히 범대위가 쥐고 있다. 범대위가 내세우는 반대 이유는 미군기지 이전이 북한 선제공격을 위한 것이고 한반도에 전쟁을 부르며 우리나라가 해외침략의 전초기지가 된다는 것 등이다. 농부에게서 농사짓는 땅을 뺏지 말라는 구호는 허울일 뿐이다.
그러니 협상을 해봐야 늘 겉도는 것이 이상할 게 없다. 엊그제 국방부는 반대측에 주민보상 문제 등을 의제로 협의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범대위는 미군 재배치문제 전반을 논의해야 한다며 거절했다. 기지이전을 전제로 그에 따르는 후속문제를 협상하자는 국방부와 애당초 기지이전 자체를 반대하는 쪽 사이에 접점이 있을 수 없다. 파국은 처음부터 예견돼 있었던 셈이다.'(신문 사설)
하지만 정부 역시 대화와 타협에 소홀했다는 비판은 면하지 못하고 있다. '평택이 주한미군의 이른바 허브(중심)기지로 떠 오른 것은 한·미가 이른바 연합토지관리계획(LLP)에 합의한 지난 2002년이다. 그만큼 정부로서는 사전 정지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정부는 그동안 주민과 대화다운 대화를 하지 못하다가 지난 달 30일에야 사실상 처음으로 만났다. 그 뒤 바로 다음날 사실상 대화중단을 선언하고 이른바 '행정대집행'이란 이름으로 공권력을 집행하겠다고 선언했다. 명분만 쌓으면 된다는 관료주의적 행태의 전형적인 예다.'(신문 사설)
파국을 전제로 일방 투쟁하는 세력이 책임이냐, 다른 의견을 통합·조정하는 기본적인 임무조차 방기한 정부 책임이냐는 논란 속에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우선은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
▨ 남은 과제들
이번 사태는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둘러싸고 벌어질 상황들의 시작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강제 진압 사후 처리에서부터 주민들과의 갈등 해소, 부지 성토와 이전기지 환경치유 비용 협의 등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해야 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 신문의 지적처럼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은 오랜 논의를 거쳐 우리측에 실리가 큰 방향으로 한·미 간 협정이 이뤄진데다 반대측 헌법소원도 각하된 사안이다. 그러므로 이번 강제 퇴거 조치는 이에 다른 국내법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라는 식의 논리로 계속 밀어붙일 수 있을까? '미국과 이견을 보이고 있는 이전기지 환경치유 비용과 평택 부지 성토 비용 문제를 우리의 부담이 최소화하도록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와 함께 생각해볼 문제는 한·미 동맹의 필요성과 의미, 주한미군 철수 여부, 주한미군의 병력 규모와 제공 부지의 적절성 등 대단히 정치적이고 복잡한 것들이다.
사회 현상은 어떤 것이든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관련된 문제들을 제대로 짚어내고 각 문제에 대한 판단, 관계에 대한 파악 등이 이뤄져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군기지 평택 이전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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