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이성 문제로 고민하는 고3 남학생입니다. 같은 학원에 오래 다니다보니 서로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생활도 즐겁고 공부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방해가 된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충고의 말씀 부탁합니다.
답 : 수험생의 이성교제는 대개의 경우 득보다는 실이 많습니다. 학생은 상담자에게 보낸 메일에서 '일주일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일요일에 학원 마치고 같이 피자를 먹으면서 한 주 동안 각자가 공부한 내용을 이야기하며 입시정보를 교환하면 휴식도 되고 상승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집에 가서도 그 여학생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맺고 끊는 것이 생각처럼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학생 스스로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군요. 이런저런 구실이나 핑계를 대지 말고 스스로를 좀 더 냉정하게 분석해 보고 현명하게 행동하기 바랍니다.
20세기 최고의 명상가 중의 한 사람인 미국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토마스 머튼은 'fall in love with, 사랑에 빠진다.'는 영어에만 있는 특이한 표현이라며, 이 숙어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나 '연못, 호수, 강에 빠지는 것'이나 일단 무엇에 빠지게 되면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자신을 제어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나 '물에 빠지는 것'은 '혼수상태에 빠진다.'라거나 '구렁텅이에 빠진다.'라는 것과 서로 통할 수 있습니다. 'fall in love with'의 'fall'에는 예기치 못한 재난이 내포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상상력이 풍부해지지만 상처를 입기 쉽고, 바보같이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일단 빠지고 나면 밖으로 나와도 옷이 마르는데 시간이 걸리는 법입니다.
'사랑을 하면 마음이 기쁜 가운데 괴롭고, 사랑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안한 가운데 고독하다.'란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철학, 과학 등 전 영역에 걸쳐 창조는 처절한 고독의 산물이었습니다. 고독은 창조의 원동력입니다. 수험생은 '마음이 기쁜 가운데 괴로운 것'보다는 '편안한 가운데 고독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생산적입니다.
어떤 일의 성패는 '단일한 목표를 향하여 일정 기간 얼마나 단순해 질 수 있느냐'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단순함이란 당면한 일에 모든 것을 다 바쳐 폭발적인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능시험이라는 단일한 목표를 향하여 앞으로 남은 6개월의 기간 동안 극도로 단순해질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이 바라는 바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나면 평소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이성교재나 사랑의 문제를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노력하십시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선가 목숨을 건 열렬한 사랑을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정상적인 젊은이라면 그런 사랑을 꿈꾸고 소망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기가 아닙니다. 학생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감당하기 힘든 갈등 속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질문자는 상대 여학생은 생활에 지장이 없고 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험생 남녀가 사귀게 되면 남학생이 심리적 갈등을 더 많이 겪는다는 사실을 참고하면 상황 판단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쨌든 서로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슬기롭게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지금부터 수능시험 칠 때까지는 오로지 한 곳에만 정신을 집중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십시오. 훗날 모두에게 축복받을 수 있는 더 큰 사랑을 위해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는 본인 스스로가 현명하게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윤일현(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ihn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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