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씨 '감청 자청설' 법정서 재론

입력 2006-05-09 06:28:54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1999년 '언론대책 문건' 사건과 관련된 자신의 전화통화를 감청해달라고 국정원측에 부탁했다는 주장이 법정에서 제기돼 그 진위가 다시 논란이 됐다.

언론대책 문건 사건은 1999년 10월 한나라당이 "여권 실세가 언론 관리방안을 담은 문건을 작성했다"고 폭로하면서 문건 출처를 둘러싼 정치공방이 빚어진 사건으로 검찰 조사 결과 전 종합일간지 문모 기자가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였던 이씨에게 팩스로 문제의 문건을 전송한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한나라당의 폭로 직후 이씨가 문건과 관련해 문 기자와 전화통화한 내용을 국정원이 감청했다는 사실이 지난해 국정원 휴대전화 도청파문이 터지면서 알려져 그 배경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당시 김승규 국정원장은 "이씨가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국정원측에 문 기자와 통화를 감청하라고 했던 것 같다"며 자진 감청설을 제기한 반면 이씨는 감청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국정원이 어떻게 감청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이 논란은 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장성원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국정원 도청사건 속행공판에서 검찰이 임동원·신건씨의 무죄를 주장하려고 증인석에 나온 이씨의 진술을 문제삼으면서 재점화됐다.

검찰은 "국민의 정부 시절 불법감청 사례는 없었다"며 두 전직 원장을 지원사격한 이씨에게 "증인도 언론문건 대책 사건으로 불법감청을 당한 사례가 있지 않느냐"고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했다.

이어 검찰은 "국정원이 한나라당 폭로 직후 증인과 문 기자가 전화통화한 내용을 감청한 테이프를 압수물로 확보했다. 둘의 대화에서 증인은 문 기자가 '일방적으로 팩스를 보냈다'는 말을 하도록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는 증인이 '억울함'을 해소할 목적으로 문 기자와 통화 내용을 미리 천용택 당시 국정원장에게 감청해 달라고 부탁한 것 아니냐"며 '감청 자청'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당시 감청당한 사실을 국정원 엄모 국장에게서 전해 들은 것은 사실이지만 녹음된 테이프는 없다고 해서 근거 없는 주장으로 받아들였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문 기자가 팩스를 보낸 사실을 국정원이 어떻게 알았는지를 증인이 엄 국장 등에게 적극적으로 묻지 않은 게 의심스럽다. 증인은 언론대책 문건 사건으로 정치적 생명에 큰 타격을 받았으므로 감청 경위도 물어봤어야 상식적으로 맞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증인으로부터 감청을 부탁받은 국정원이 녹음 테이프를 건네줬다간 'DJ 정부의 불법감청'을 자인하는 꼴이 돼 실제 증인에게 주지 못했던 것 아니겠느냐"고 몰아붙였다.

이씨는 "내가 알기에는 DJ 정부 시절 국정원의 조직적 도청은 없었으며 김은성 전 차장이나 국정원 직원들이 검찰과 플리바게닝한 결과 전직 국정원장들이 죄인으로 몰린 것이다. 국정원장의 최고 덕목은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것(NCND)'인데 김승규 원장은 제대로 확인 안된 도청사실을 시인하고 말았다"고 진술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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