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돈 주세요"…'캥거루 부모'의 눈물

입력 2006-05-08 10:16:00

다 큰 자식에게 용돈…황혼취업 "등골이 훤다"

섬유업체 직공으로 출발, 사장 자리까지 올랐던 박모(58) 씨. 지난 2004년 섬유회사를 정리한 그는 지금 대구시내 한 빌딩 주차관리원으로 일하고 있다.

'박 사장'의 추락은 서른살 먹은 아들 때문. 2년전 대형 전자업체에 입사했던 아들은 1년만에 직장을 잃었다. 비정규직 취업이었던 탓이다.

아들의 재취업은 1년째 감감 무소식. 휴대전화에다 인터넷요금, 사흘이 멀다하고 다니는 면접 비용에다 친구들 만나는 돈까지, 아들은 한달 50만 원 가까이 받아간다.

회사를 정리한 돈으로 아파트 하나를 장만, 월세 수입으로 살아 왔던 박 씨는 올 초 아들을 보면서 위기감을 느꼈고 다시 일터로 나섰던 것.

박 씨는 "생활비 중 가장 몫이 아들에게 들어가는 돈"이라며 "현금소득이 없고 임대수입뿐인 상황에서 생활비는 과거와 같으니 다른 사람 보기 부끄럽지만 다시 일터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8일 어버이날, '캥거루 부모'들의 눈물이 카네이션을 적시고 있다. 갈수록 심각한 '청년 실업'으로 직장 못구하는 20·30대 자식들을 보살피느라 은퇴 이후 황혼취업에 나서는 아버지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

'자수성가(自手成家)' 네글자에 의지, 앞만 보고 달려온 개발시대 50·60대들. 그들의 황혼이 서럽다.

정년 5년을 남겨둔 지난해, 구조조정 대상에 올라 대기업을 그만둔 이모(56) 씨. 그는 대학 졸업 후 직장을 구하지 못한 딸(25)의 대학원 학비 마련에 등골이 휜다고 말했다. 퇴직금만으로는 노후 대비에다 대학생인 막내아들 학비, 네식구 생활비까지 대기 역부족. 할수 없이 지난달부터 아파트 경비원으로 나섰다. 체력이 예전같지 않지만 한달 80여만 원이라도 벌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딸이 대학원에 가겠다고 했을 때 솔직히 섭섭했어요. 그런데 말릴 수 없었습니다. '무능한 아빠'라고 오히려 역정을 낼까봐요." 그는 친구들에겐 건강유지 때문에 경비일을 한다고 둘러댄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대구의 연간 신규취업자(118만1천 명) 가운데 20대 비중은 21만9천 명(18.5%), 30대는 31만9천 명(27.0%). 5년전(2001년)과 비교, 20대는 2.1%p, 30대는 3.0%p 줄어든 수치.

반면 지난해 말 기준, 50대와 60대 취업자는 각각 19만7천 명(16.7%), 9만8천 명(8.3%)으로 2001년과 비교해 각각 3.1%p와 1.7%p 증가했다. 청년실업이 고착화하면서 다시 일터로 나서는 50대, 60대가 늘고 일자리를 얻는 20대, 30대는 감소한 것. '캥거루족' 20, 30대들의 잦은 이직이 50·60대를 일터로 내모는 셈.

50·60대들은 단순 노무직, 청소, 경비, 주차용역 등 '험한 일터'로 향한다. 일자리가 적은 탓에다 전문기술 등이 부족한 탓이다.

대구종합고용안정센터 집계결과,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센터를 통해 실업급여(실직했을 때 국가가 주는 돈)를 받아간 사람(17만 6천133명) 중 20대(4만 119명)와 30대(4만 5천616명)가 50대(4만743명)·60대(1만227명)보다 훨씬 많았다.

이 센터 관계자는 "비정규직 바람이 워낙 거세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가 갈수록 힘들고 지역의 50·60대는 '자식 고생하는 것을 보느니 내가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취업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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