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재 민주노동당 대구시장 예비후보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운동권 출신이다. 1986년 경북대 민족민주화투쟁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시위를 주동한 혐의로 8개월간 복역했고 동시에 제적을 당했다. 이후 94년 입학한 지 13년 만에 학사모를 쓰게 된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사회에 관심만 많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에릭 프롬의 '건전한 사회'와 같은 사회과학서적을 읽으며 남몰래 사회의식을 키웠다. 부모 모두 교사인 덕분에 경제적으로도 어렵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뒤 막연한 부채의식이 그를 짓눌렀다. 당시 전두환 정권에 맞선 선배들이 감옥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혼자만 편하게 살 수 없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구속과 제적은 피할 수 없는 훈장(?)이었다.
제적을 당한 이후 대구 3공단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첫 사회생활을 한 그는 노동운동에 눈을 뜨게 된다.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 10시간 넘게 근무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교육, 신문 제작 등을 통해 의식화 교육을 주도해 갔다. 92년 사회평론 '길'의 대구경북 지사장을 겸하며 잠시 언론계에 종사하기도 했다. 97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 선거운동을 했고 2000년 민노당 창당 주역으로 활동했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구에 출마했다. 대학 시절 만난 부인이 학원을 운영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대학 시절 함께 활동했던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은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성격에다 끈기가 있어 지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친구다."고 기억했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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