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생생 여행체험] 고령 대가야박물관

입력 2006-05-03 07:13:19

뜻하지 않게 아주 특별한 기회가 찾아왔다. 미군 공보관으로부터 매일신문사와 함께 하는 '외국인 생생 여행체험' 제의가 들어왔기 때문. 대구시내 구경을 가기로 한 일정을 취소하고 가벼운 맘으로 따라나섰다. 장소는 경북 고령군 대가야 박물관.

지난해 7월부터 대구에서 한국생활을 시작해 서울, 부산, 경주 등 몇 곳은 가봤지만 고령 대가야 문화체험은 처음이었다.

간단한 한정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출발했다. 대가야박물관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쯤. 약 2천년 전 시작된 대가야 문화가 500년 가량 지속되면서 이룬 토기문화와 철기문화 등이 이채로웠다.

한국역사에서 신라, 고구려, 백제 등 삼국시대 이야기는 한번쯤 들어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가야'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것은 생소하기도 해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왕이면 한국역사도 제대로 알고 싶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기뻤다.

대가야박물관에서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한 부족의 왕이 죽게 되면 그의 시종, 양식, 재물 등을 함께 묻었던 순장(殉葬) 풍습. 지름 20∼50m에 이르는 큰 무덤을 파고 왕을 가운데 묻고는 옆에는 호위무사, 창고를 지키는 집사의 무덤, 그리고 주변에는 시종들의 작은 무덤 20여 개가 놓여있다.

'너무 잔인한 방법으로 죄없는 많은 사람을 집단적으로 묻은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듣고서야 당시 가야 장례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부족의 왕이지만 당시에는 신처럼 모셔졌고 '한번 모셨던 주인은 사후세계에서도 주인'이기 때문에 이들은 함께 묻히는 것 마저도 영광이라 여겼다고 했다.

시종들 무덤은 부부, 자매, 부녀 등 가족형태에 따라 묻는 방법도 다 달랐다. 부부는 양 방향으로 포개지게, 자매는 나란히, 부녀는 아버지 위에 딸을 올려놓아 당시 가족간 질서도 알 수 있었다. 역사가 짧고 일찍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미국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야의 옛 장례풍습이 아닐 수 없다.

일찍 발달한 철기문화도 놀랍기만 했다. 옹기 용광로에 철광석을 녹여 만든 갑옷과 화살촉, 창, 칼 등 각종 철제무기는 '가야'라는 작은 나라의 당시 영향력이 컸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

고령 대가야, 김해 금관가야, 성주 성산가야, 창녕 비화가야, 함안 아라가야, 고성 소가야 등 6소국이 합쳐져 이룬 가야국. 그 중에서도 철을 다루는 기술이 가장 뛰어났으며 전성기를 오래 지속했던 소국이 '대가야'라고 한다.

토기 만드는 기술, 철기 문화 등은 일본에까지 전파됐다고 하니 6개 가야국이 뭉친 '대가야'라는 나라가 독립국으로 한 때 전성기를 누렸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삼각형 모양을 일자로 놓아 독특한 문양을 연출한 토기 제조기술, 금을 녹여서 만든 왕관 및 귀고리 등은 지금봐도 아름다울 정도로 정교하고 예술적이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대가야 박물관 김재호 문화관광해설사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김상윤 미군공보관의 동시통역으로 유익한 한국 역사탐방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여덟살 연상인 아내 캐서린의 말로 여행을 마무리한다. "대한민국은 보면 볼수록 또 깊이 알게 될수록 정이 가는 나라입니다."

리차드 올리베이라(34.미군부대내 악기 전문지도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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