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우리에게도 따뜻한 맘이 있다

입력 2006-05-02 08:59:38

1820년 밀로스 섬에서 발견된 '밀로의 비너스'는 양 팔이 없다. 고고학자들이 복원을 고려했지만, 양 팔을 만들어 붙일 경우 오히려 예술성을 훼손할 것으로 판단, 그냥 두기로 했다. 최근 방한한 구족화가 앨리슨 래퍼는 말했다. "아무도 '밀로의 비너스'에게 새 팔을 만들어서 붙이려고 하지 않는다. 조각상 그 자체로 완벽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사람이 두팔이 없을 경우 기괴하고 흉하고 결함이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고. 두팔이 없는 '살아 있는 비너스' 래퍼가 우리 사회에 던진 이 메시지는 강렬하다. 우리는 그녀로 인해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부끄러워한다.

장애인에 대한 접근방식에 있어 동양과 서양은 대조적이다. 수년전 필자가 미국 대학에서 강의할 때다. 심각한 곤경에 처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이라는 단어를 서너차례 반복해서 사용한 적이 있었다. 순간 몇몇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당황한 필자는 허겁지겁 강의를 끝낸 뒤 옆방의 교수에게 의 원인을 물어 보았다. 그것은 놀랍게도 필자가 사용한 이라는 단어가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로 공공장소에서의 사용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는 것이었다. 장애인의 천국이라는 미국답다는 생각을 했다.

장애인에 대한 논쟁끝에는 늘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국가들이 등장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국 거주경험이 있는 한국인들은 미국의 장애인 편의시설과 장애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따뜻한 호의에 감동하게 된다. 실제로 수많은 장애인이나 장애인을 둔 부모들이 단지 장애인에 대한 호의와 편리때문에 그렇지 못한 조국을 등지고 이민가는 사례들을 많이 봐 왔다. 그들이 한국에서 겪은 장애인에 대한 설움과 슬픔은 듣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히고 분노하게 한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하체를 시커먼 고무비닐판으로 감싼 채 시장 통로를 힘겹게 오르내리는 장애인들을 바라 보는 우리의 마음은 납덩이로 무겁다. 실제로 장애인 편의시설과 정책,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관심에 관한 한, 한국과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뒤떨어진 나라고 또 무정한 국민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정말로 장애인들을 업신여기는 것일까. 나는 이같은 판단이 선입관에서 오는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물론 대다수 서양인들은 우리가 놀랄 만큼 곰살스럽게 장애인을 대한다. 편의시설 또한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장애인 화장실에 한번 가보라. 우선 크기가 한국의 아파트 안방보다도 훨씬 크다는 데 놀라게 된다. 공항, 리조트 등등 어느 곳을 가보더라도 장애인 우선이다. 장애인 전용 카트는 물론 장애인을 위한 전담스탭까지 두고 생글생글 거리며 도와준다. 그러나 이 같은 서구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호의는 오랜 세월 동안 몸에 밴 습관이 아닐까.

얼마전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수천여명의 장애인이 몰려가 거세게 항의한 적이 있다. 대법원이 심의중이던 안락사 인정법안에 반발, 법안 심의자체를 극렬하게 반대했다. 왜 그랬을까. 정상인들이 안락사를 핑계로 장애인인 자신들을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고 현지 언론은 분석했다. 장애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감춰진 속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다.

그러나 한국인은 어떤가. 장애인을 대하면 우선은 모른 척, 안 본 척한다. 상대방 신체에 어떤 불편이 있으면 오히려 관심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민족이 한국인이다. 장애부분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한마디 정도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서구인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장애인임을 부각시켜 행여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곧 서양인이 던지는 '따뜻한 한마디' 를 놓쳐버리는 무뚝뚝한 모습으로 비춰지게 된다. 그러나 돌아서서 깊은 연민을 느끼는 사람들이 바로 한국인들이다.

지난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래퍼 방한을 계기로 좀더 침착하게 우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선진국은 무조건 장애인에게 친절하고 한국인은 장애인을 멸시한다는 자기비하적인 생각은 이제 버릴 때가 왔다. 물론 장애인에 대한 부족하고 불편한 편의시설은 여전히 심각하지만, 우리에게도 봄빛 같은 따뜻한 마음은 있다.

김동률 KDI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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