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이 흐르는 풍경]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입력 2006-05-02 07:31:06

우리나라 CEO들이 많이 읽는다는 책으로《렉서스와 올리브나무》가 있습니다. 토머스 L. 프리드먼이라는 미국 기자가 썼지요.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세계화'입니다.

그는 세계화 현상을 그저 일순간의 추세나 유행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강력한 국제시스템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체가 불분명하고, 초국가적이며, 모든 사람을 동질화시키고, 모든 것을 표준화시켜버리는 세계화의 물결, 이 거대한 흐름으로 인한 지구 곳곳의 갈등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들고 있습니다.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 회사의 최고급 승용차 이름인 렉서스는 더 나은 생존양식을 추구하는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을, 올리브나무는 인간의 뿌리인 가족과 지역사회, 민족 등 자기정체성의 닻을 상징하고 있지요.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갈등이 아픈 상처로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으로 결혼 이주 여성들의 삶이 떠오릅니다.

농촌 총각 가정 이루기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어느 군청 직원의 이야기입니다. 마흔이 넘도록 장가를 못간 총각들과 베트남 여성들의 결혼을 직접 주선했었는데 어느 날, 결혼한 지 한 달도 채 안된 새신랑한테서 전화가 왔더랍니다. '지금 각시가 사흘 째 식음을 전폐하고 울고 있는데도 말이 통하지 않아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으니 빨리 와 해결해 달라고.' 그런데 자기도 베트남 말을 몰라 부랴부랴 대구로 전화를 해서 한 나절이나 지난 후에 도착한 통역사를 대동하고 달려가 그 베트남 신부를 만나보니 '한국으로 시집오면 공주처럼 잘 살 뿐 아니라 친정에 돈을 보낼 수 있다'고 했었는데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의식주 생활이 너무 달라 도저히 견뎌낼 수 없으니 모국으로 보내달라고 떼를 쓰더라는 것입니다.

요즘 결혼 이주 여성들의 정착을 돕기 위한 교육으로 한국어 습득 및 한국문화 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렉서스를 꿈꾸다 올리브나무마저 잃고 방황하는 이들을 또 한번 좌절시키는 것은 '한국인들의 차가운 차별의 시선'이라지요. 이들의 얼굴 생김새와 피부색깔과 언어와 문화가 우리와 다름을 인정하고, 이 땅에서 함께 살아야 할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훌륭한 세계 시민 되기 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들로 하여금 단군할아버지의 올리브나무 아래로 옮겨오도록 무턱대고 강요만 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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