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소년에서 최고 공무원까지…김범일 예비후보

입력 2006-05-01 10:47:11

김범일 한나라당 대구시장 예비후보는 강한 흡인력의 소유자이다.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논리로 설득하는 능력이 있다. 같이 일해 본 공무원들은 합리적이면서도 카리스마를 지녔다고 평한다. 상업을 했던 할아버지, 아버지 영향을 받은 덕분에 명분에 집착하지 않고 실사구시하는 면도 돋보인다.

그는 산골 소년에서 최고위 공무원까지 올랐다. 경북 예천 소백산 산자락 50여 가구만이 살던 산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년 때 대구로 전학을 왔다. 산골 학교에서 1등을 도맡은 학업 능력과 부모님의 교육열이 합쳐진 것이다. 어린 소년에게 객지 생활은 독립심과 적응력을 키워줬다. 김 후보 특유의 친화력과 원만한 대인관계는 객지 생활의 고생이 준 덤이었다. 객지 생활에서도 활달한 개구쟁이였지만 공부는 늘 상위권이었다. 특히 4남1녀의 첫째였던 그는 보수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장남으로서 책임감을 항상 교육받았다. 당시 장래희망이 '장남으로서 집안을 일으키는 큰 인물'이었을 정도.

경북중-경북고를 거쳐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그는 4학년에 올라가면서 당시 최고 인기직장이었던 한국은행과 대기업 입사를 두고 진로에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관으로 가서 출세해 집안을 일으켜라."는 아버지 당부를 듣고 행정고시로 방향을 틀었고, 졸업을 앞두고 합격(12회 행정고시)했다.

그의 큰 무기는 영어 실력. 영어로 농담을 할 정도다. 중학생 시절 영어 테이프를 무조건 외웠고 고교 때에는 'PINETREE(소나무)'라는 영어 서클에서 활동했다. 총무처 서기관 시절에는 미국 남가주대 대학원에 2년간 유학을 다녀왔다.

그는 공무원으로 성공적인 길을 밟았다. 원만한 대인관계와 빠른 두뇌회전, 선제적인 업무처리 스타일 등이 인정을 받은 것. 첫 발령을 받은 총무처 사무관 시절부터 "촉망받는 장관감"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특히 부서 내 역대 최장기 행자부 기획관리실장(1998년 6월~2000년 2월)을 지냈다. 기획관리실장 자리는 국회의원을 상대하는 일이 업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래서 정치권에도 많은 인맥을 만들게 됐다.

DJ정부 들어 차관급인 산림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대구시 정무부시장으로 직급을 낮춰 왔다. "경상도 정부였다면 일찌감치 장관을 달았을 것"으로 보는 공무원들도 적잖다.

이창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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