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였다. 사무실 앞길에서, 한 꼬마가 어른 주먹만한 돌멩이를 끈에 묶어 끌고 가면서 "어서와, 얼른 집으로 가야지"하며 중얼거렸다. 호기심에 "그게 뭐야"하고 묻자, 아이는 천연스럽게 "강아지잖아요."하고 말했다.
어른이 돼서 그것도 모르느냐는 표정이다. 그 말과 행동이 어찌나 예쁜지, 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꼬마가 현근이다. 지난 주 금요일 동대구역에서 감전사한 바로 그 아이다.
그 후로도 현근이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우리 사무실이 그 아이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이다. 유독 인사성 밝고, 수다스러운 아이여서 사무실 동료들도 모두 현근이를 귀여워했다. 현근이는 휠체어를 타는 동료가 신기한 듯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사무실에서 키우는 '진짜' 강아지와 곧잘 장난도 쳤다.
그러다가 운수 좋은 날이면 용돈도 얻어가곤 했다. 나만 보면 쪼르르 달려와서 "성용이 아빠, 안녕하세요"라며 아는 체를 하였다. 현근이와 우리 아들은 효동초등학교 4학년 동급생이다.
언젠가, 아들에게 현근이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이의 이야기는 대략 이러했다. "엄마·아빠가 없어. 많이 가난하대요." "공부는 맨날 꼴찌고요, 결석도 많이 해요." "밤11시까지 돌아다녀요."
현근이가 '왕따'냐고 묻자,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현근이 하고는 안 놀아요." 너도 그러냐고 묻자, "같은 반이 아니라서...."라며 목을 움츠렸다. '왕따' 현근이에게도 친구가 딱 한 명 있다고 한다.
그 아이도 엄마·아빠가 없어 할머니와 산다고 했다. 학년도 같고 처지도 비슷한 두 아이는 늘 붙어 다녔다고 한다. 미군 장갑차에 함께 올라갔다가 겨우 목숨을 건졌다는 2학년 아이는, 그 친구의 동생이다.
이 비통한 사건을 접하면서 새삼스레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근이 부모와 고모를 탓하는 게 아니다. 그 분들은 현근이를 충분히 돌 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엄마는 교도소에 있고, 고모는 밤낮으로 일해도 기초생활수급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난한 여인이다. 오히려 내가 탓하고 싶은 사람들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교육당국, 절대 빈곤층 가정의 아이를 거두지 않은 복지행정, 어린 아이가 고압선에 접근하도록 방치한 동대구역 관계자들, 밤11시가 넘도록 돌아다녀도 무심하게 보아 넘긴 나를 비롯한 지역 주민들이다.
이들 모두는 어린이를 보호해야 할 어른들인데, 누구도 그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 어른들이 현근이를 죽음으로 내몬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른의 한 사람으로 죄책감을 지울 수가 없다.
맑은 영혼은 따뜻한 하늘나라로 간다는 말로 애써 마음을 달래보지만, 자꾸만 천진하던 현근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있을까.
윤삼호(대구장애인연맹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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