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군청에서 밀양방면 25호 국도를 따라 7km 지점쯤 가면 '새마을운동 발상지' 표석이 눈에 들어온다. 화악산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들이 만들어낸 깊은 계곡 사이 산비탈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그림 같은 마을. 이 곳이 바로 새마을운동 발상지 마을인 신도1리다.
청도천과 국도, 신대구부산 고속도로가 마을 앞을 지나고, 경부선 철도의 열차는 바로 눈앞에서 잡힐 듯 소리를 낸다. 아담한 양옥집 50가구에 주민 130명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신도마을의 3무(無)
"노는 사람 없고, 술독에 빠진 사람 없고, 노름 없는 마을이 신도마을이지요."
연일 정씨(鄭氏)가 임진왜란을 피해 들어오면서 마을을 이룬 신도리는 새마을운동이 퍼져가던 1970년 당시에는 청도천변이 사과밭으로 바뀌었고, 마을은 벌써 부촌으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자조협동으로 소득증대 ▷검소절약으로 저축하기 ▷자력으로 푸른마을 가꾸기 등 '잘살기 운동' 3대 목표를 정하고 '근면·자조·협동'이라는 새마을 정신을 실천하고 있었다.
이런 신도마을의 새마을운동은 지난 19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마을 운동이 국가적으로 불붙기 전에 이 마을은 농촌환경 개선사업이 시작됐다. 이런 변화는 김봉영(80) 씨가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이장을 맡으면서 큰 역할을 했다.
김씨는 먼저 길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하고 당시 마을 뒤쪽 골짜기 뒤실(道谷) 마을과 현재의 위치인 새터(新基)마을을 잇는 '토끼길' 2.5km를 40여일 만에 폭 4m의 농로로 만들었다. 59년에는 부엌개량, 축담개축, 옥내장식 등 가정가꾸기에 주민끼리 선의의 경쟁을 벌였고, 61년에는 부업장려 사업으로 가구당 감묘목 50그루 이상, 복숭아 10그루 이상, 사과 1천그루 이상 갖기 사업을 시작했다. 63년 생활개선구락부가 운영됐고, 1통장 갖기 운동, 마을금고 육성 등이 이어졌다.
특히 각각 25가구씩 두 마을로 분리됐던 신도리가 수 차례 마을회의 끝에 지금의 위치로 한마을을 이룬 것과 마을 간이역 신거역 개통은 이 마을주민들의 자부심이 되고 있다. 신거역 개통은 철도청과 주민들이 사업비를 절반씩 부담, 주민들은 일일이 등짐을 지고 플랫폼을 만들어 하루 2차례씩 통일호 열차를 세운 것이다.
당시 청장년이었던 마을노인들은 "우리 스스로 가꾸어 나간다면 머지않아 잘 사는 마을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힘든 줄 모르고 일했다."고 기억했다.
◇새마을 운동 메카 새 도약
신도마을은 새로운 도약에 부풀어 있다. 새마을운동이 최근 새로 조명을 받는 가운데 5월 새마을운동 기념공원이 착공되기 때문이다. 지난 70년 제주도 지도자 시찰단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다녀간 견학단은 그 동안 새마을 발상지 기념비를 둘러보고 가는 게 고작이어서 주민들에게는 큰 아쉬움이었다. 이우권(40) 마을 이장은 "새마을 운동의 유래와 변천사를 제대로 알리고, 휴식문화공간 역할도 하는 새마을 명소로 주민들의 기대가 높다."고 말했다.
2007년말 완공될 3천700평 규모의 기념공원은 36억 원을 들여 새마을운동 전시관, 새마을광장, 생태(잔디)주차장, 피크닉장, 야외전시마당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임병화(47) 새마을 담당은 "기념공원 정비를 계기로 조경공사, 정보통신 등 제2의 새마을 운동으로 발전시키고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새마을 발상지 자부심에다 연평균 6천만 원의 소득을 올리는 신도마을이지만 여늬 농촌마을처럼 젊은이가 없다는 게 고민이다. 차한태(54) 정보화마을 위원장은 "손녀와 이메일을 나누기 위해 컴퓨터실을 찾는 노인들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했다.
청도·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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