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로 손꼽히던 강우석 감독이 여타의 수식어를 벗어던진 채 "앞으로 감독직에만 전념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미묘한 시선들이 영화계에서 오갔다. 그런 여러 시각을 접어두고 '감독' 강우석의 역량에 새삼 기대를 거는 시선이 상당히 진중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선언 이전에 이미 시작했던 영화 '한반도'의 촬영을 모두 마친 강감독이 26일 오후 기자들을 만나 "최근의 한·일 분쟁을 보면서 솔직히 당혹스럽다"고 털어놓았다.
"무대 위에 배우와 감독이 앉아있고, 무대 아래 기자들이 줄줄이 앉아있는 '제작보고회' 형식 보다는 그냥 얼굴 마주보며 이야기하는 게 더 편하다"고 표현한 강감독은 "근미래로 설정했던 일이 바로 지금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는 '고이즈미 총리가 도와주는 것 아니냐'고 농담 삼아 말하지만 난 정말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지금 상태에선 무모한 짓이 돼버렸다"고 말을 꺼냈다.
'한반도'의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과거 식민지배를 했던 일본이 가까운 미래에 다시 한반도 침략을 계획한다는 설정. 이 때문에 공(空)·해(海)상에서 대규모 전투신이 보여진다는 것, 과거 일제시대 고종과 명성황후의 시해 사건이 새로운 각도에서 생생히 재현된다는 점 등 몇 가지만 알려졌을 뿐이다.
때문에 이 영화 촬영에는 군의 도움이 컸다. 강감독은 "해상신은 실제 군축함 3~4대를 놓고 촬영한 후 컴퓨터그래픽으로 바다를 채워야 하지만(이것 또한 큰 도움이다), 공군신의 경우는 실제 전투기가 그대로 등장한다"고 했다. 공군 작전 수행중 작전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실제 작전 광경을 그대로 찍었다는 것.
또한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 이어 두번째로 광화문 12차선을 모두 막아놓고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군 부대 진격신을 촬영하는 등 실제 같은 가상현실이 영화속에 담겨 있다.
"한국과 일본의 분쟁을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설정했다"는 강감독은 뚜렷하지 않은 '근미래'의 개념에 대해 "아직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지 않았으나 교류는 활발히 진행돼 한민족의 동질성을 점차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일본의 침략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설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요즘 독도를 둘러싼 양국의 치열한 외교전과 일본의 동해 수로측량계획으로 불거진 파문으로 인해 영화속 가까운 미래가 현재가 돼버려 당혹스럽다는 것.
"영화가 개봉되면 여러 논란에 휩싸일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과거를 보는 시선부터 일본을 대하는 시선까지 여러 말이 나올 것이다. 일본에 있는 친구들은 '왜 이 영화를 찍었느냐, 영화 개봉전 일본에 왔다가라, 개봉후엔 못 올 것 같다'는 말까지 한다"는 말도 농담처럼 꺼냈다. "단돈 5천달러에라도 일본에 팔아 일본인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말 역시 뼈있는 농담이다.
영화의 20%정도 차지하는 과거 일제시대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그는 "1895년부터 1905년까지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누구와도, 심지어 사학자와도 논쟁할 만큼 많은 공부를 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둘러싼 여러 설과 3·1운동을 촉발했던 고종의 죽음에 대해 도전적인 해석을 영화를 통해 내놓을 예정이다.
언젠가 본 시나리오 '아침의 나라'가 너무 생뚱맞아 "어떻게 영화로 만들어지겠어"라며 물리쳤음에도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한번 해보자"라는 방향 전환을 통해 '한반도'가 시작됐다. 그 이후 15번의 시나리오 수정작업을 거쳐 '한반도'가 완성됐다.
강감독은 "통일이 왜 필요한지 인식하지 못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을사5적'이라는 선조를 뒀다는 이유로 후손들에게 그들의 땅을 회수해야 하느냐고 되묻는 10대, 20대들에게 과거가 어떤 의미로 존재한다는 것을 단지 영화를 하는 한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었다"는 소박한, 그러나 항상 목표로 했던 바를 영화를 통해 이뤄왔기에 가능한 큰 꿈을 내비쳤다.
그렇다면, '투캅스' '공공의 적', 그리고 1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실미도'까지 한국 영화 흥행사의 주요 인물인 강우석 감독에게 흥행 부담은 없을까. 100억원 가까운 제작비가 투여된 작품인데.
"'실미도'를 촬영할 때는 웃으면서 촬영한 후 막상 후반작업을 하며 개봉이 점점 다가오자 부담감에 웃음을 잃어갔다. 그 때와 비교되게 '한반도' 때는 절박한 심정으로 임했다. 웃음이 없었다. 그런데 촬영 막바지에 갈수록 웃음이 나왔다. 솔직히 영화적으로만 본다면 500만 관객은 자신한다. 그만큼 최선을 다해 찍었다. 다만 영화 외적인 변수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점은 우려된다."
애초 계획했던 7월20일 개봉보다 일주일 앞당겨 7월13일로 개봉일을 확정한 상태. 그러나 강감독은 그보다 더 빨리 선보이고 싶다는 조바심을 내고 있다.
"컴퓨터 그래픽 작업이 만만치않지만, 난 이렇게 본다. 컴퓨터그래픽으로 한두 장면 표현하지 못한다고 이 영화에 관객이 몇 만명 더 들고 안들지 않는다고."
그만큼 영화의 기본 드라마에 자신있다는 뜻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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