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옥입니다] 아름다운 흠

입력 2006-04-26 07:27:58

사지 멀쩡한 어떤 이가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에 차를 댔다. 주차 관리인이 비장애인은 주차할 수 없다고 팔을 내젓자 그가 태연스레 말했다. "난 마음이 6급 장애인이라고요."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현대판 비너스'앨리슨 래퍼를 보면 우리야말로 참으로 심각한 마음의 장애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선천성 기형의 몸이지만 얼굴에 어려있는 강인한 삶의 의지, 도전 정신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짧은 결혼생활 동안 남편으로부터도 학대받았지만 그녀는 세상에 굴복하지 않았다. 장애인에다 미혼모라는 주변의 냉소어린 시선 속에서도 아들을 건강하게 키우고 있고, 구족화가와 사진작가로서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장애가 있는 것이 행복해요."라는 말이 전혀 가식으로 들리지 않을 만큼 그녀의 삶에선 긍정과 감사가 넘쳐 흐른다.

서울판 '살인의 추억'의 유력한 용의자로 붙잡힌 30대 남자. 충동적 연쇄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그는 "세상이 나를 버렸다."며 세상을 원망했다. 땀흘리며 열심껏 살아본 적도 없고, 인생에 맞서 볼 생각도 없는 채 제발로 악의 구렁텅이로 걸어갔으면서도 세상 핑계만 댄다. 그런데 비단 그 사람뿐일까. 우리네 역시 걸핏하면 "세상이···."운운하며 핑곗거리를 찾는다.

이란산 카펫은 그 정교한 짜임새와 아름다운 문양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처럼 유려한 카펫을 짜는 사람들은 한 올 한 올 세심히 짜나가다 어느 한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흠 하나를 남긴다고 한다. 일명 '페르시아의 흠'이다. 또 인디언들은 구슬로 목걸이를 만들 때 일부러 흠 있는 구슬을 하나씩 살짝 꿴다고 한다. 이른바 '영혼의 구슬'이다. 세상에 어떤 존재도 완벽할 수 없음을 놀라운 지혜로써 보여준다.

'제2의 헬렌 켈러'라고도 불리는 앨리슨 래퍼에게 한때 삶이란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끝없이 밀려오는 시련의 파도를 용솟음치는 내적 열정으로 극복했다. 누더기처럼 엉망이 됐을 수도 있었던 그녀의 삶은 반짝이는 보석으로 바꾸어졌다. 무결점의 보석이 아니라 곳곳에 상처가 난 아롱진 보석!

아마도 신(神)은 끝없이 탐욕스럽고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 그녀를 이땅에 보낸 것 같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