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의 주제인 영(影)과 운(韻)이 의미하듯 그림 속에 담긴 암시와 여운이 보는 이의 마음에 와 닿기를 바랍니다."
올 8월 영남대 조형대학에서의 28년 생활을 마무리하는 문종옥(65) 교수는 지금껏 배출한 제자 23명과 함께 하는 '정년퇴임 기념전'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점을 부탁했다.
문 교수에 따르면 "추상화는 문학으로 치자면 시(詩)라고 할 수 있고, 추상작업은 '화두(話頭)'를 놓치지 않기 위한 불가의 '참선'과도 같은 것"이다. 1960년대 초 대학시절부터 시작된 추상작업에 대해 간단하게 내린 정의. 문 교수는 "이제 내 속의 변화들을 솔직하게 표현해 낸 역작을 남기는 일에 작가로서의 마지막 열정을 바치고 싶다."며 정년퇴임 후의 계획을 간단히 밝혔다.
1964년 대학을 졸업한 뒤로 꾸준히 추상작업을 해 온 문 교수지만 개인전 약력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1996년부터 8회 정도의 개인전이 다이다. 교육에 몰두하느라 그런 것이리라 생각했다. 문 교수의 말로는 "개인전을 꼭 열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란다. 작품 활동은 나름대로 꾸준히 해왔다. 이번 전시회에서 많은 작품을 걸러내야 할 정도였다.
특히 정년퇴임전이라는 의미에 걸맞게 "큰 허물없이 명예롭게 퇴임할 수 있는 즐거움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작업"한 근작들도 다수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개인전'이라는 타이틀에 맞춰서 작품 공개를 하고 싶지는 않다."고 문 교수는 덧붙였다. 대신 자신의 이름을 딴 홈페이지(www.moonjongok.com)에 작품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학자로서의 삶에 관해 물어봤다. "대학교육이란 것은 학생들이 자각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대답을 먼저 했다. '그림에 가치를 불어넣는 길을 찾아가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해 문 교수가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요즘 학생들은 옛날같지가 않다."는 것이 문 교수의 말이다. 4년이라는 교육 과정 자체가 '그냥 거쳐간다'는 의미로만 남게 돼 자체의 성과를 바랄 수 없게 됐다는 설명이다. 문 교수 자신이 '과연 내가 학생들 스스로 폭넓고 깊이있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란다.
"자기의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진출에 대한 희망이 없어 자포자기하는 것만 같다. 사회에서 이런 분위기가 학교의 분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교육자로서의 생활에 어찌 보람이 없었을까?
이 질문에 문 교수는 주저하지 않고 "내 뜻을 이해해주는 제자들이 수는 적어도 아직도 활동하면서 그 뜻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번 전시회에도 서울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했을 때 가르친 제자들(현재 50대)이 내려올 겁니다."라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이거 얼마든지 자랑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문 교수의 반문이 이어졌다.
문 교수는 제자들에게 "젊은이들이 작은 땅에서 기를 펴고 역량을 한껏 발휘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평소 학생들에게 해오던 말로 "인생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자기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세계적으로 뒤지지 않는 인물이 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농부들은 엄격할 땐 엄격하게 지킬 건 지킵니다. 자연에 순종하는 것은 농경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같은 복잡다단한 사회에서도 필요한 미덕"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도록에 담긴 활짝 웃는 모습의 사진처럼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한 작업'에서 '자기 중심의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문 교수에겐 정년퇴임이 아쉬움보다는 설렘으로 다가오는 '축제'같은 의미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 전시회는 23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1~3전시실(053-606-6114)에서 계속되며 문 교수의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80여 점과 제자들의 그림 20여 점을 같이 감상할 수 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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