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고법 상고부 설치 무산…'지역 균형발전'에 역행

입력 2006-04-20 11:21:10

2007년 3월부터 대구 등 전국 5개 고등법원에 들어설 예정이던'고법 상고부'가 국회 입법 과정에서 서울고법 상고부 설치로의 방향전환은 수도권 변호사들의 로비와 지방분권과 지역균형 발전에는 여전히 소극적인 상당수 국회의원들의 소신(?)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울고법에만 상고부가 설치될 경우 지역주민의 소송편의 제도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의 오랜 논의 과정은 공염불에 그치게 되고 지역민들은 상고심을 위해 서울까지 오가는 불편을 겪게 된다.

지역 고법내 상고부 설치안은 사법분야 지방분권의 대표적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오히려 수도권 강화에 기여하는 쪽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사개추위의 5개 고법 상고부 설치안은 지난해 말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지난 2월 대통령 재가를 받아 입법을 위해 국회에 통보된 상태였다.

그러나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법사위원회가 이 안건 심의에 들어가면서 변질되기 시작했다. 대구·경북출신 모 의원이 '지방에 상고부를 5개나 설치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했고, 수도권 변호사들의 로비로 마음이 흔들렸던 여야 의원들은 하나같이 "지방분권도 좋지만 너무 비효율적"이라는데 의견 일치를 봤다.

5곳에 고법 상고부를 설치하면 상고심이 가지는 법령 해석 기능이 무력화 될 우려가 있으며 서울에 근무하는 법관들이 지방에 내려가야 하는 불편함, 법령 해석 기능 통일성 부족 등을 들어 대법원에 수정 제출을 요구했다.

대법원은 사개추위 안대로 통과시켜 줄 것을 요청했으나 그렇게 하면 4월 통과가 어렵다는 국회통보를 받고 어쩔 수 없이 현재 서울고법 상고부 설치안을 수정 제출해 놓은 상태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은 "조정안 제출과정을 본인이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법사위원 중 유일한 판사 출신이라 연락역할을 하는 바람에 그렇게 알려진 측면이 있다. 주도는 다른 사람이 했지만 사실은 법사위원들이 모두 합의한 사안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여기다 법사위원들은 지방 변협의 반발에 대해 "지방에 있던 것을 서울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서울 것을 분배하는데 왜 야단법석을 떠느냐."는 시각도 갖고 있다.

국회 법사위 관계자는 번복 가능성과 관련, "상당수 법사위원들이 '국회의 모양새가 이상해질 가능성이 있고 모든 것을 지방에 골고루 설치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으며 고법 상고부 대신 대법원 확대 개편이 맞지만 꼭 해야 한다면 서울에만 설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성은 낮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역 법조계와 지방분권 국민운동 등 시민사회 단체들은 국회 논리가 너무 궁색하며 지역민의 재판받을 권리 확대라는 사법개혁 본연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는 반론을 제기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법사위원 몇 몇이 모여 결정할 문제가 아닌 만큼 정당 차원과 국회 차원에서 재논의를 요구하겠다는 태세다.

판사들은 법령 해석 기능이 무력화 된다는 국회의원들의 주장에 대해 사법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발언으로 규정하고 있다. "부별 재판을 전제로 하는 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이송 및 특별상고제도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서정석 대구변호사협회 회장도 "근본적으로는 대법원을 확대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어려워 상고부를 고법마다 설치, 상고법원 접근 편의성을 높이기로 한 것"이라며 "법령 해석은 기존 판례에다 상고부끼리의 의견조정 등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법사위 의견을 반박했다.

19일 긴급 회동을 가진 지방변협 회장단은 서울고법에만 상고부를 설치할 경우 이를 저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여의치 않으면 차라리 대법관 증원 등 대법원 개편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기로 했다.

김형기(경북대교수) 지방분권국민운동 초대 상임대표는 "서울에 있던 판사들이 지방 상고부에 내려가서 근무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논리라면 지방에 법원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국회를 통과한 사안도 아니고 간담회 과정에서 논의된 사안을 국민들의 뜻에 따라 재수정 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경직된 자세"라고 꼬집었다.

지역 출신 의원들이 상당수 관여돼 있다는 데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많다. 대구경북지역혁신협의회 이창용 사무국장은 "공공기관이전 등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지역사람들이 힘을 합쳐야 하는 판국에 지역출신 의원들이 수권강화 쪽으로 기우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최정암기자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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