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는 세상의 빛"…점자전환 프로그램 개발 탁노균 씨

입력 2006-04-19 10:56:19

믿을 수가 없었다. 인정할 수도 없었다. 다시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없게 된다는 현실을.

탁노균(44·대구 서구 내당동) 씨. 그는 1995년 봄 '포도막염'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포도막염은 망막과 유리체, 수정체, 각막 등 눈의 주요한 부위에 손상이 생겨 실명을 초래하는 병.

삼성항공에서 이름난 항공 기술자가 되겠다는 꿈도,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삼성맨' 명함도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장애인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괴로웠다."고 했다.

"눈을 고치려 전국 안 가본 곳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용하다는 무속인을 찾아 굿판을 벌이기도 했죠."

좌절과 단절감에 빠져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던 탁 씨가 다시 일어난 건 실명 이후 1년이 지나서였다.

당시 막 보급이 확산되던 컴퓨터와 PC통신은 탁 씨에게 한 줄기 서광이 됐다.

그는 스스로 길을 개척하기로 했다. 문서를 점자로 전환해 주는 'ACE'라는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한 것.

컴퓨터는 그와 세상을 연결하는 새로운 눈이 됐고 결국 자리를 털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고 활동 폭도 넓혀갔다. 1998년에는 서울 시각 장애인 연합회 중앙회 정보화 위원을 지냈고 이듬해에는 서울 정보화 재활협회에서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9년부터 치기 시작한 볼링으로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 출전하기도 했고 틈틈이 아동문학도 공부, 지난해 '붕어 한 마리'라는 작품으로 아동 소설가로 등단했다. 붕어빵 장사를 하는 아저씨와 시각장애인 어린이의 풋풋하고 따뜻한 우정을 그린 내용.

그의 재활에는 아내가 큰 힘이 됐다. 탁 씨가 재활에 전념하는 동안 마음으로 격려하며, 밤늦게야 마치는 학원을 운영하며 묵묵히 생활전선에 섰던 아내였다.

탁 씨는 매년 '장애인의 날'만 되면 쏟아지는 관심을 '12개월 할부'로 해 달라"며 활짝 웃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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