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은 하늘만이 안다.'는 영화계 속설이 있다. 흥행에 성공하려면 영화가 잘 제작돼야 하지만 개봉 시기나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예상치도 못했던 이변이 속출하기 때문. 제작자들로서는 흥행의 걸림돌이 될 만한 변수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주위의 상황을 따져 '언제 간판을 내거느냐'하는 개봉 타이밍은 흥행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첫 번째 공식이자 원칙이 된다.때문에 충무로에서는 우리 영화끼리의 충돌을 피하려 한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6월의 월드컵, 그에 앞선 5월 할리우드 흥행대작의 잇따른 개봉은 비수기 4월을 한국 영화전쟁터로 만들고 있다. 하이라이트는 기대작 세 편이 동시에 격돌하는 27일. '도마뱀', '맨발의 기봉이', '사생결단' 등 3편의 영화가 상반기 한국영화 주도권을 두고 피할 수 없는 정면 대결을 벌인다.
◆삼색의 영화
이 세편의 영화는 흥행성과 연기력을 갖춘 스타들의 맞불 경쟁이라는 점, 또 저력 있는 제작자들의 야심작이라는 점에서 영화계 안팎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충무로 공인 커플 조승우와 강혜정이 처음 연인으로 출연해 일찌감치 화제를 모으고 있는 '도마뱀'(감독 강지은·제작 영화사 아침·씨네월드)은 20년을 알고 지낸 조강(조승우)과 아리(강혜정)의 신비스런 연애담을 그린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졌다 싶으면 다시 만나는 두 사람의 묘연한 관계가 호기심을 자극하며 두 주인공의 사랑을 코믹하면서도 애절하게 담아냈다. 지난해 각각 말아톤과 웰컴 투 동막골, 연애의 목적에 출연해 1천 500만 관객을 합작한 조승우, 강혜정 커플이 어떤 연기 변신을 보여줄지 기대되고 있다.
'맨발의 기봉이'(감독 권수경·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는 가문의 위기에서 빛났던 신현준과 김수미가 다시 한번 찰떡 호흡을 빚어낸다. 실제 나이 40세. 그러나 지능은 8세에 머문 노총각 기봉(신현준)이 팔순 노모(김수미)를 기쁘게 하기 위해 육상 대회에 출전하는 얘기를 극화했다. 일등을 하면 이가 없어 마음대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엄마에게 틀니를 해드리리라고 결심, 매일 동네를 달리며 연습에 매진하는 기봉이의 효심을 무기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할 작정이다.
앞 선 두 편이 '연인', '가족'을 다룬다면 황정민·류승범 두 배우의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사생결단'(감독 최호·제작 MK픽쳐스)은 남성적인 색채가 강하다. 액션 느와르를 표방한 '사생결단'은 1998년 외환위기 직후 부산을 배경으로 독종 마약 판매책(류승범)과 악질 형사(황정민)가 스스로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충돌하는 것을 축으로 한다. 2001년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조연으로 인연을 맺었던 두 배우가 흥행력을 보장받는 배우로 다시 만나 펼치는 의기투합이 영화를 이끈다.
◆비수기 영화시장을 선점하라.
이번 빅매치는 6월의 독일 월드컵, 5월 5일 '미션 임파서블 3', 19일 '다빈치 코드', 25일 '엑스맨-최후의 전쟁' 등 개봉을 앞두고 있는 화제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의 맞대결을 피하면서 이뤄졌다.
그러나 과연 4월 비수기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하는 점은 과제. 2001년 3월 '친구', 2003년 4월 '살인의 추억'이 히트를 치긴 했지만 4·5월은 통상적으로 영화의 주 관객 층인 학생들이 중간고사 등으로 관객이 가장 적은 비수기.
실제 영화진흥위원회 통계로 보면 지난해 4월 전국 관객 수는 659만 명으로 여름 성수기인 8월의 1천 410만, 겨울방학인 12월의 1천 467만명에 비해 절반에도 못 미친다. 5월이라고 크게 나아지진 않는다. 서울기준 지난해 4월 255만 명, 5월 관객은 333만 명으로 8월 525만, 12월 540만 명에 비하면 적은 시장이다.
◆승자의 독식이냐? 나눠먹기냐?
올 4월에 개봉했거나 하는 영화가 20여 편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정된 파이를 나눠먹어야 하는 형국이어서 초반 주도권 싸움이 승패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예상된다.
흥밋거리는 각기 개봉한다면 각각 첫 주 주말 박스오피스의 1위를 노릴 만한 작품이 동시에 개봉, 자존심을 건 한 판 승부를 펼친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직전에 무산됐던 대작영화 세 편의 동시 개봉을 떠올리는 영화팬이라면 기다려지는 대목이다.
장동건·이정재 주연의 해양블록버스터 '태풍'(감독 곽경택·제작 진인사필름)과 권상우·유지태 주연의 누아르 '야수'(감독 김성수·제작 팝콘필름), 장진영 김주혁의 휴먼 드라마 '청연'(감독 윤종찬·제작 코리아픽쳐스)은 당시 12월 15일 동시 개봉을 준비하며 유례없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전쟁을 예고했다. 그러나 청연이 2주 뒤로, 야수가 4주 뒤로 각각 개봉일을 변경하면서 삼파전이 무산됐다. 장르와 분위기가 판이하게 다른 세 작품 가운데 관객들은 과연 어떤 작품에 손을 들어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