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평가하는 일은 쉽잖다. 매기는 이의 판단이 공정하다고 100%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떠냐가, 평가가 올바르냐 아니냐로 이어지기 일쑤다. 그래서 섣불리 남을 평하지 말라고 한다. 섣부른 평가가 화를 자초하는 일이라고도 한다.
한국자유총연맹 권정달 (權正達·70) 총재는 여러 직함을 쓴다. 전국 50만 명의 회원이 가입한 연맹 총재에다 안동 권씨 종친회장이다. 안동중, 초등학교 동창회장도 맡고 있다. 연맹은 16개 시도지회에 232개 전국 지부 조직이 딸려 있다. 행사도 잇따르고 만나는 사람도 다양하다.
연맹은 보수단체다. 그러나 극우를 부정한다. 시대 상황변화에 균형을 맞추려 한다. 그렇다고 주장해야 할 가치는 포기하지 않는다. 북한에 대해서도 도와줄 건 돕되 부정할 건 부정해야 한다고 한다.
회원으로 여성이 절반을 넘는데다 청년층도 10여만에 이른다. 보수라고 고리타분하다고 여기지 말라는 설명을 곁들인다. 연맹이 운영하는 예식장과 주차장, 자동차극장 및 자회사인 한국산업개발 등에서 나오는 수익금 70억~80억 원으로 신문과 잡지를 만들고 회원에게 인터넷을 통한 국제전화 무료서비스를 제공한다. 교육도 중요한 일이다. 반공교육이 아니라 '통일대비' 교육이다.
5공화국에서 그의 자리는 컸다. 당연히 그 시대를 부정하는 오늘의 세태가 못마땅하다.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하고 잘잘못은 국민과 역사가 판단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다. 시작의 과정에서 불가피했던 일들이 '정통성 시비'로 이어진 부분이 아쉽다.
5공 핵심이면서도 하나회 회원이 아니었다. 그 탓에 5공 탄생 전 굵직한 문제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한다. 그게 후일 5·18 특별법에서 다른 동료들과 달리 법망을 피하게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살아남은 그는 배신자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동료들의 답답한 심정으로 이해한다.
15대에 다시 국회로 돌아와 김대중 정권이 탄생한 후 국민회의로 옮겼다. 안동 개발을 도와주겠다는 약속이 이적을 결심케 했다고 한다. 경상도에서 국민회의 후보로 당선되면 안동을 크게 살린다고 믿었다. 김대중이나 민주당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 살길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고향은 그를 선택해 주지 않았다.
종친회장에다 동창회장으로서 자주 고향을 찾는다. 그럴 때면 줄어들고 옹색해지는 고향의 살림살이가 안타깝다.
한때는 권력의 막강 실세였던 그가 보는 권력의 속성은 망각이다. 잠시 왔다 가는 것을 잊고 만다. 게다가 정도를 무시하고 모양새를 갖추려 하다간 되레 화를 부르는 게 권력이었다.
미국 체류 시절 회고록을 쓸 요량으로 녹음을 했었다. 그러다 모두 없애버렸다. 지나 온 일들이 죄다 사람과 사람의 일인데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준비할 생각이다.
군인으로 시작, 정치인에서 이제 사회단체 지도자로 변신한 인생에 후회는 없다. 고향을 위한다고 뛰어다녔던 일이 뿌듯하다. 부지런히 다닐 만큼 건강하다. 매일 아침 계속하는 속보가 건강의 비결이다. 한때는 두주불사였지만 이젠 과식이 겁나 저녁이면 일찍 귀가한다. 편한 밤이 활기찬 내일을 이어주기 때문이다.
서영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