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1천리를 가다] (13)풍력발전단지 '바람난 사람들'

입력 2006-04-15 10:32:17

동해바다로부터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으면 영덕 창포리로 가면 된다. 해안절경이 빼어난 강구~축산도로의 중간에 놓인 창포리는 바람이 세기로 유명하다. 4월 중순인데도 바람은 차갑다.

심술기가 많은 바람이 얇은 봄옷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살갗을 후비는가 하면 애써 다듬어 놓은 머리카락을 여지없이 헝클어버려 굳이 '깔끔'을 떨 필요가 없는 곳이 창포리다.웬만한 사람들은 싫어하는 이 바람을 사랑하고, 바람덕에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창포리 야산을 거대한 바람개비로 뒤덮고 있는 영덕풍력발전단지의 이진철(34) 대리, 류정훈(31), 손민규(29) 주임이 그들이다. 세 사람은 바람이 나도 단단히 난 사람들이다. 지난해 4월 4일 풍력발전단지가 준공됨과 동시에 바람과의 동거를 시작한 이들에게 이제 바람은 연인이다.

영덕풍력발전단지는 신재생에너지의 대표주자로 각광받고 있는 국내 최초의 대단위 풍력발전소다. 높이 80m의 풍력발전기타워에 달린 직경 82m의 거대한 바람개비가 원을 그리며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저절로 힘이 솟는다. 특히 동해의 일출을 밑그림으로 풍력발전기를 클로즈업시킬 때면 이국적인 감흥까지 덤으로 맛볼 수 있다.

24대의 풍력발전기를 아기 다루듯 어루만지는 세 사람은 이곳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들이다. 기술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은 발전타워를 다람쥐가 나무를 타듯 오르내린다. 하루에 한번씩 80m의 발전타워를 오로지 손과 발을 이용해 계단을 타고 오른다. 25m 지점과 55m 지점에 한 번씩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그래도 힘들다. 꼭대기까지 오르는데 5분. 한 번 오르면 끼니도 아래서 올려주는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드러내기는 민망하지만 재밌는 부분도 있다. 용변 문제다. 소변은 꼭대기 부분에 작은 창이 있어 그곳에서 아래로 뿌려(?) 보낸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시원하게 볼일 보는 사람은 우리뿐일 겁니다." 이 대리가 쑥스럽게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바람이 초속 15m로 불 때는 꼭대기가 흔들려 몸도 덩달아 움직일 정도로 바람을 타지만 발전타워는 초속 60m까지 견딜수 있도록 설계돼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 또 초속 20m가 넘으면 안전을 감안, 자동으로 정지된다. 바람개비 날개 1개의 무게가 무려 2.5t에 이르기 때문이다.

풍력발전은 바람의 초속이 4.5m만 되면 가능해 연간 풍속이 7m인 창포리가 이상적이다. 24대의 풍력발전기에서 연간 9만 6천700여㎿h를 생산해 낸다. 이는 영덕군민 전체 2만여 가구가 사용하는 전력량이다.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바람만으로 이 정도 전력을 생산해 낸다는 생각에 직원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영덕의 전기는 우리가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만큼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류정훈 주임의 목소리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힘든 점도 있지만 좋은 점이 더 많다고 했다. 하루종일 볼 수 있는 것은 바다와 나무뿐이어서 답답함도 있지만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데다 안개가 낀 날 발전타워에 오르면 그야말로 구름탄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 해발 150m에다 80m의 발전타워 꼭대기에서는 멀리 후포항까지 보인다. 특히 순찰을 위해 24대 발전기를 한바퀴 돌고 나면 따로 운동이 필요없을 정도여서 세 사람의 하체는 돌덩어리처럼 단단하다.

이 대리는 "해안 쪽에 위치한 17번 발전타워에서는 낚시까지 가능하지만 아직 해보지는 않았습니다. 꼭 한번 해봐야죠." 라고 했다.

세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바람이다. 류 주임은 "바람이 불어야만 바람개비가 돌아가기 때문에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노래가 바로 '바람아 멈추어 다오'입니다."라며 웃는다.

이들은 퇴근 후 집에서도 발전기를 감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한치의 빈틈도 없애기 위해 노트북 컴퓨터로 실시간 발전단지를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풍력발전기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이들은 천상 바람을 껴안고 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운명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영덕·이상원기자 seagul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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