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기대를 접어야 하는 이유

입력 2006-04-14 09:53:19

참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안 그래도 인터넷이다 뭐다해서 '몰라도' 아무 상관없는 세계 곳곳의 뉴스가 실시간으로 전해져 골치 아픈 판에 하루를 멀다하고 '차라리 모르면 좋을' 뉴스가 터져 나온다.

4월이 아직 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김재록 게이트에 이은 현대자동차 회장 부자의 비자금 조성문제가 터져 나왔고, 외환은행의 BIS(자기자본비율) 조작사건이 뒤를 이었다. 또 우리의 뿌리인 농촌의 현실을 더욱 암울하게 하는 밥상용 수입쌀이 국내에 도착했다.

그러나 최대 압권은 한나라당이 검찰에 고발한 당 중진 김덕룡, 박성범 의원의 서울 구청장 공천 관련 금품수수 사건이 아닐까 싶다.

밝혀진 금액만 김의원은 4억4천만 원, 박의원은 21만 달러(약 2억 원)이다. 게다가 박의원은 200만 원이 넘는 양주와 넥타이, 모피코트, 핸드백 등 1천500만~2천만 원 상당의 물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코미디같은 사건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말로만 떠들던 공천관련 금품수수가 사실적으로 드러난 것이고, 유추하긴 싫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크고 작은 금품수수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더욱 더 웃기는 것은 이에 대한 두 의원의 해명과 이들을 고발한 한나라당의 태도다. 이들은 부인이 2, 3월 수차례에 걸쳐 받은 사실을 '4월초에야 알고 즉시 돌려주라고 했다'(김덕룡) '케이크 상자에 돈이 든 것을 몰랐고, 물품들까지 돌려주면 자기에게 공천을 안 준다고 생각할까봐 나중에 돌려주면 된다고 생각했다'(박성범)고 해명했다. 이 해명은 구태여 하지 않아도 국민들은 다 안다. '아내가 받았고 자신은 전혀 몰랐다', '돌려주라고 했기 때문에 돌려준 줄 알았다, 나중에 돌려주려고 했다'는 내용은 치사한 금품수수 사건이 생길 때마다 나온 최우수 모범 답안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태도를 보자. 박근혜 대표는 이들에 대한 고발을 망설였고 허태열 사무총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대국민 사과 사안이 아니다'고 했다. 심지어 당 지도부 등 주류파들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결단은 인정해야한다고까지 했다. 말꼬리를 잡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국민이나 나라를 위한 결단이 아니라 '차떼기 정당'이라는 유령이 되살아날까봐, 2달도 채 남지 않은 선거판에 악재가 될까봐 도망갈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오로지 당의 이익을 위해 발표한 것을 두고 '읍참마속'이라니. 제갈량이 마속의 목을 치면서 자신의 행위가 1700여년 뒤에 이렇게 코미디처럼 사용될 줄 알았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긴 '정치개혁을 위한 고뇌어린 구국의 결단'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만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국민들은 오래 전부터 이 커넥션을 알고 있었다. 기초·광역의원, 자치단체장 공천대가가 3억, 5억, 10억 원을 홋가한다는 이야기가 선거철에 터져나오는 음해나 마타도어일 뿐이 아니라 것도, 지방선거때만 되면 출마 후보들이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며 눈치를 살피는 것도 모두 알고 있다.

그래도 이들을 심판하지 않는 것은 한가닥 기대 때문이다. 수십년을 속았지만 "이번만은, 이번만은" 하면서 거는 끊임없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기에 지방자치단체장과 광역의원 공천권을 가진 것도 모자라 지난해 기초의원 공천권까지 쓸어 담는 폭거를 저지를 때도, 정치라는 괴물이 제 욕심을 다 채우고 나면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그 몫을 나눠주겠지하는 허망한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도 그 기대를 접어야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김덕룡, 박성범 의원의 예보다는 다소 약해지만 전국 곳곳에서 공천과 관련된 잡음이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회의원이든, 자치단체장이든, 광역·기초 의원이든 주인대리가 주인행세를 하는 세상이 최소한 몇 년은 더 지속된다는 뜻이며, 결국 진짜 주인은 선거때만 잠시 주인노릇에만 만족해야한다는 서글픈 의미이기도 하다.

정지화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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