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처음 국기를 들고 나타난 크로아티아는 3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 크로아티아는 강호들이 즐비한 유럽지역에서 이후 월드컵 본선 무대에 개근, 신흥 강호로서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에 이어 2006년 독일 월드컵대회에 참가하는 크로아티아는 1998년의 황금시대에는 전력이 미치지 못한다.
다도 프르소는 예전만큼 강하지 못한 크로아티아의 희망. 32살의 노장이지만 독일 월드컵 대회가 첫 월드컵 출전이어서 본선 무대에서 되도록 오래 머물고 싶어한다. 늦게 국가대표로 발탁된 만큼 찬란한 빛을 발하려는 욕구도 강하다. 그는 29살때 불가리아와의 유로2004 예선 경기에 국가대표로 뒤늦게 데뷔했다.
1990년대 후반 프랑스의 아작시오에 몸담을 때 2부리그에서 뛴 적도 있을 정도로 주목받지 못했던 프르소는 2003-2004시즌 프랑스의 AS모나코를 유럽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으로 이끌면서 눈길을 모았다. 특히 스페인의 강호 데포르티보와의 예선 경기에선 4골을 몰아치기도 했다.프르소는 유로 2004 대표팀에 발탁, 크로아티아를 본선으로 이끌었으나 크로아티아는 잉글랜드, 프랑스에 밀려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독일월드컵 예선에서 프르소는 10경기에서 5골을 기록, 팀내 최다 득점을 기록하며 스웨덴을 제치고 조1위로 본선에 직행하게 만들어 조국 팬들에게 영웅으로 떠올랐다. 187cm, 76kg의 신체 조건을 지닌 그는 제공력과 몸싸움에서 강점을 드러냈으며 처음에는 특출난 면이 없어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지 못하다 득점 감각이 점차 빛을 발하면서 이제 부동의 스트라이커로 자리잡았다.
그는 아작시오 시절 53경기에서 21골을 기록했고 특히 1998-99시즌 30경기에서 13골을 터뜨리며 명문 AS모나코로 옮겼다. AS모나코에선 101경기에서 28골을 터뜨렸고 유럽 챔피언스리그와 유로 2004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4-2005시즌을 앞두고 스코틀랜드의 명문 글래스고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2004-2005시즌 34경기에서 18골을 터뜨리며 레인저스에 기쁨을 안겨준 그는 2005-2006시즌에는 24경기에서 8골을 기록중이다.
오랫동안 무명이었다가 꽃을 피운 프르소는 자신에게 한 번의 기회로 다가온 월드컵 무대에서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지석기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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