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분 가사는 인생에서 탈출한다는 의미잖아. 좀더 자신감 있게 하자. 그렇게 노래해선 탈출 못해요."
신승훈의 질책에 중국어 통역이 이어진다. 11일 오후 신승훈이 운영하는 도로시뮤직 녹음실. 한국을 첫 방문한 중국 남자가수 류자량(25·劉嘉亮)이 신승훈의 히트곡 '운명'을 중국어로 녹음하느라 진땀을 뺀다.
'자이 워 더 뤼 투 시앙 타오 투오(나의 여행길에서 탈출하고 싶고)'란 대목이 20여 차례 반복된다. 음절에 강약을 주며 노래 맛을 살리는 게 류자량에게 쉽지 않은 눈치. 입 근육 경직과 심적 긴장을 풀어주려 신승훈이 농을 건다.
"중국에서 앞으로 '운명'을 부를 때마다 이 부분 녹음할 때가 생각나겠다. '그때 내가 진짜 힘들게 해냈지'하며 눈물 나지 않을까. 한번 꼬이면 계속 꼬이니 일단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머리를 긁적이던 류자량이 쑥스러운듯 웃는다.
◇신승훈 "류자량은 프로듀싱한 첫 후배"
류자량은 2004년 말 중국서 발표한 1집 타이틀곡 '니 타오 티 아이세이(당신은 도대체 누구를 사랑할까)'로 작년 '중국판 구글'인 인터넷 검색업체 '바이두닷컴' 차트 등 각종 모바일 및 온라인 음악사이트에서 돌풍을 일으킨 주인공.
류자량의 음반사인 성문문화전파유한공사의 류쓰치(劉思齊) 사장이 신승훈의 음악에 감동, 적극적으로 류자량의 2집 수록곡 프로듀싱 및 노래 참여를 요청했다.
이에 류자량은 5월 발표할 2집에 신승훈 3집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5집의 '운명'을 리메이크해 수록한다. 이중 '로미오와 줄리엣'은 중국어 솔로로, '운명'은 신승훈과 듀엣으로 각각 한 소절씩 한국어와 중국어로 노래한다.
이날 작업은 신승훈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990년 데뷔 이래 처음으로 본인이 아닌 다른 가수의 음반에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중국에 프로듀서로 첫발을 내딛게 된 것. 그는 류자량을 위해 '운명'을 생동감 있게 재편곡했고 녹음을 진두지휘했다.
◇류자량 "한국어 발음, 휴~ 어렵네"
'운명'은 자작곡인 데다 숱하게 불러 신승훈에게 녹음은 식은 죽 먹기. 관건은 류자량이었다. '라이, 부파쭈이 호우 여우 두오 여우 두오 우에 시앤(오라, 결과가 위험하더라도 두려워 피하지 않겠다)' 소절에서도 제동이 걸렸다.
"'라~이' 하고 음을 바로 떨어뜨리지 말고 '라아~아~이'를 빠르게 부른다는 생각으로 해요. (신승훈이 직접 시범을 보인다) 이 부분은 세상을 향해 오라고 하는 내용이니까 더 남성적으로."
'라이' 한 음절 녹음에만 20분간 지체하자 신승훈은 아예 녹음 부스로 들어가 개인 레슨을 한다. 놀랍게도 류자량의 소리와 음정이 달라지는 게 확 느껴진다.
마지막 난관은 또 있었다. 신승훈과 류자량이 함께 한국어로 '화려해질 나의 미래를 위해'란 대목을 듀엣으로 부르며 화음을 넣는 부분. 발음이 어렵나보다.
"화려해질 나미를 위해" "화려했던 나에 위해" 등 류자량의 발음은 질서가 안 잡힌다. 급기야 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손을 들고 개별 연습을 선언했다.
3시간여 끝에 녹음을 마치고 나온 류자량은 기가 다 빠진 모습. 신승훈은 머리까지 부스스해 나온 그의 등을 두드리며 "고생했다. 음색이 좋다. 감정도 잘 살렸다"고 칭찬했다.
◇류자량 "신승훈 만날 생각에 밤잠 설쳐"
류자량은 "신승훈 선배의 모든 음반을 들어 쑨난(孫南)이 부른 '아이 빌리브(I Believe)' 외에도 노래를 잘 알고 있다"며 "'운명'은 대중에게 큰 힘을 주는 노래여서 선택했는데 한·중 가수 지망생에게도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승훈 선배는 훌륭한 프로듀서이자 뛰어난 뮤지션입니다. 그래서 긴장을 많이 했고 만나기 전 흥분돼 잠을 설쳤지요. 친절하시고 선생님 같았어요. 기분 좋게 작업했으며 향후에도 다른 활동으로 인연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그는 신승훈의 도움에 대한 답례로 장식용 용(龍)을 선물하며 "용은 중국에서 무척 귀한 영물로 승리와 건투를 상징한다. 신승훈 선배의 음악이 늘 승승장구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했다"고 인사했다.
신승훈은 9집 음반을 선물하며 "한국과 중국 가수의 공동 작업은 실질적인 교류란 측면에서 의미 있다"면서 "작업 기회가 더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두 사람은 싱어송 라이터이면서 데뷔 전 아르바이트로 라이브 클럽에서 노래했다는 점 등 공통분모로 쉽게 친근감을 느꼈다.
녹음 현장에는 중국 방송과 언론이 한국으로 원정 취재를 나왔다.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 시나닷컴, 인라이트 미디어가 제작하는 연예 프로그램 '오락 중심', 중국 인터넷업체 대중온라인, 푸젠(福建)성TV가 취재 경쟁을 벌였다. 특히 푸젠성TV는 신승훈 단독 프로그램을 기획해 심층 인터뷰를 했다.
한편 류자량은 한국에 며칠 더 머물며 재킷 촬영을 할 계획이다. 재킷에 수록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룹 테이크의 멤버 네이든 리(본명 이승현)와 탤런트 강은비가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분해 13일 촬영에 임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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