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폭로전으로 멍들기 시작하는 정치권

입력 2006-04-11 07:24:30

지난 3월 정치판의 거친 폭로전을 지켜봐야 했던 기자는 또다시 국회에서 재연되는 폭로전을 감내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주부터 시작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지난 달 여야가 벌였던 난타전이 재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이명박 서울시장의 '황제테니스' 건과 부산시장.서울시장 부인의 관용차 사용 문제 등을, 야당은 이해찬 전 총리 3.1절 골프, 금융브로커 김재록씨 로비사건 등을 재차 거론하고 나섰다. 이 문제들은 지난달 여야가 대부분 진상조사단까지 만들었던 사안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시작되는 설전은 이런 여야의 진상조사가 근거가 된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니올시다."이다. 일단 폭로부터 해놓고 '아니면 말고식'으로 전개되는 우리 정치판의 폭로전은 대부분 상식을 뛰어넘는다. 언제부터 이런 폭로전이 소위 '관행'으로 굳어졌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난 2002년 대선 때까지는 거슬러 올라가야할 것 같다.

당시 이회창 후보를 멍들게 했던 당시 집권세력의 3가지 의혹 제기는 대표적이다. 소위 병풍사건, 기양건설 로비 의혹 사건, 20만달러 수수 의혹 사건 등 나중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난 사건으로 당시 이 후보는 결정적 타격을 받았다. 당시 여당 국회의원으로 기양건설로비의혹 사건 진상조사단을 맡았던 천정배 법무장관은 이와관련해 "당시 언론에서 폭로기사가 났고 의원으로서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혀 문제가 없다'는 투였지만 사실은 특정언론과 집권세력이 한통속이었다는 것을 자인한 것으로 들린 것은 무리일까?

지난달 시중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명박 서울시장의 '황제테니스' 건도 마찬가지다. 주로 이 시장 측근들이 주장하는 소리지만 야당 대선 예비 주자로 이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전혀 근거없는 소리로 들리지는 않았다. 기실 '황제골프' '대통령골프'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황제테니스'라는 말은 못들어본 터여서 의아해 하던 중이었다.

앞서 이해찬 전 총리의 3.1절 골프 파문 때문인지 황제골프가 황제테니스로 대칭됐고 곧바로 무슨 체육관이 어떻고, 상량문건이 어떻다는 식의 폭로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런 무책임한 폭로전에 대한 책임을 집권세력에게만 물을 수 있을까? 이회창 후보가 폭로전의 희생자로 거론될 때면 여권 인사들은 '800억원의 불법대선자금을 모은 이 후보의 부도덕성'을 거론하고 이명박 시장에 대해서는 "대선 때 이 시장을 쓰러뜨릴 자료는 수두룩하다"고 말한다. 폭로전이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받을 지라도 의혹의 빌미를 제공한 쪽은 본인들이라는 소리다. 오는 5월31일 지방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대선 국면으로 접어든다. 정치권이 폭로전을 벌이든 말든 상관은 없지만 갈수록 살벌해져 가는 정치 때문에 멍드는 민심은 어떻게 치유한단 말인가.

이상곤기자 lees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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