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하우스중앙이 출간한 '백만불짜리 열정'이 화제다. 지난 2월 25일 초판1쇄가 발행된 뒤 날개 돋힌 듯 팔려 벌써 4쇄에 들어갔다. 구학서 신세계 사장, 김쌍수 LG전자 부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구택 포스코 회장 등 재계의 거물들이 리더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칭찬했다.
저자는 이채욱(60) GE코리아 회장. 저자 소개란에 '상주에서 태어났다'라는 글을 보고 수소문 끝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여느 기업의 회장과 달리 직접 휴대전화를 받았고, 고향에 인사하는 셈치고 만나자는 기자의 요청을 시원시원하게 받아들였다.
◆회사 분위기가 특별하다=서울 강남구 청담동 GE타워 14층에 있는 GE코리아 회장실은 전망이 좋았으나 무척 좁았다. 흔한 소파 하나 없고 너댓 명이 앉을 수 있는 원형 탁자가 고작이었다. 취재진을 응대한 PR담당 이사는 회장 앞에서 스스럼없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서 있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나니 낮 12시 15분. 회장이 손님을 맞고 있는데 직원들은 모두 식사하러 나가고 없었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이 회장은 "불필요한 격식이나 의전은 비용이잖아요."라면서 밝게 웃는다. 점심 식사 겸 인터뷰가 진행된 2시간 동안 그가 찡그리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참 밝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경북, 실의에서 벗어나라=상주 남산중을 졸업하고 넉넉치 않은 가정 형편으로 철공소에 취직하려 했으나 주변의 권유로 상주고에 진학했다. 영남대 법대에 천마장학생으로 입학했으니 공부를 잘한 모양. 이후 큰 물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키우고 싶어 삼성물산에 들어갔고, 삼성GE의료기기 사장, GE메디컬 사업부문 동남아·태평양지역 책임자를 거쳐 GE코리아 회장이 됐다.
태어나서 대학까지 경북·대구에서 생활한 '토종 TK'이라지만 출향 30년이 넘은 글로벌 CEO인 그가 의외로 대구·경북의 사정에 밝았다. 같은 상주 출신인 강신호 전경련 회장과 가끔 골프를 치고, 같은 영남대를 나온 이승한 삼성테스코 사장, 영덕 출신인 황영기 우리은행장과 부부 동반 모임을 갖는 등 출향인사와 교분이 넓다.
그래서인지 그는 대구·경북에 대해 독특한 관점을 갖고 있었다. 나름의 강점이 많다는 것. 다만 대구·경북이 자신을 모를 뿐이란다. "대구·경북이 실의에 빠져 있는 것 같아요. 한결같이 대구·경북이 다 죽는다고 앓는 소리를 합니다. 누가 뭐래도 대구·경북은 경쟁력이 있습니다. 스스로 강점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문제죠. 디지털 시대, 글로벌 시대에서 경쟁에 이기려면 먼저 자기 것을 중시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삼립산업 이충곤 회장, 교촌치킨, 안동병원 강보영 대표를 꼽으며 가능성을 엿봤다.
◆GE가 삼성에서 빌려간 CEO=이 회장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것은 43세의 나이에 삼성GE의료기기 사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7년 연속 적자로 존폐 위기에 몰렸던 회사를 6년간 연평균 45%의 매출신장을 올리는 우량 회사로 탈바꿈시킨 것. 이런 이 회장에게 매료된 파울로 프레스크 GE 부회장(현 피아트 자동차 회장)은 1996년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편지를 썼다. GE메디컬 동남아·태평양지역 사장으로 영입하기 위해서다. "CW(이채욱 사장의 영문 이니셜)를 GE에 주시면 좋겠습니다. 힘들면 GE가 비용을 다 댈 테니 몇 년간 빌려주면 고맙겠습니다." 프레스크의 믿음대로 그는 GE메디컬이 외환위기에서 잘 견디도록 했고, 다시 GE초음파의료기기 아시아 총괄사장으로 취임해 2년만에 시장점유율 6위에서 1위로 올리는 괴력을 발휘했다.
◆장점을 찾아라=첫 경영을 맡은 삼성GE의료기기는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적자는 누적되고, 한국과 미국 직원들은 서로 갈려 싸웠다. 회사는 패배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 회장은 먼저 회사의 장점을 찾았다. 모회사가 GE와 삼성이란 세계 일류기업이란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보였다. 의료장비 기술이 최첨단이고 제품은 초고가. 고객도 대부분 박사급(의사)으로 최고 수준. 회사 문화도 글로벌 스탠다드. 우수한 점을 찾아보니 수없이 많았다.
문제는 직원 사기 앙양책. 그는 급여를 삼성보다 10%를 더 주는 방안을 선택했다. 입사동기로 삼성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김순택 현 삼성전관 사장을 찾아가 "급여를 10% 올려야 하는 이유가 10가지도 넘는다."고 고집해 이를 관철시켰다. GE도 같은 논리로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개발은 서울대 공학과 출신을, 생산은 삼성전자의 전문가를, 영업은 최근 삼성에서 그만둔 김모 부장을 영입해 맡겼다. 삼성을 그만두면 재입사가 안된다는 불문율이 그때 깨어졌다.
"직원들이 신바람이 났습니다. 삼성보다 10% 더 준다는 말에 훌륭한 인재들이 몰려들었죠. 지혜를 모으고 아이디어가 나오면 즉각 실행했습니다."
회사에 긍정적 에너지가 모아지니 매출은 저절로 늘었다.
◆직원들을 이용하라=잭 웰치 전 GE 회장과 짧은 만남을 갖기도 한 이 회장은 그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끝없는 변화와 혁신, 윤리 경영을 'GE문화'라고 꼽았다. '회사를 발전시키는 방안은 직원들의 머릿속에 있다. CEO가 끌어내 쓰느냐 마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잭 웰치가 한 말이다. 그도 "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발굴해 실행하느냐가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이고 성공할 수 있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오늘의 GE는 회사 문화를 끝없이 바꾼 데 있다."고 굳게 믿는 그는 "열정이 있으면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고 했다.
이 회장은 자식 농사도 성공했다. 딸만 셋인데 큰 딸은 휴렛패커드(HP)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고, 둘째가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 시보 중이다. 또 막내는 GE 역사상 처음으로 인턴 대학생으로서 프로젝트에 참여해 특허를 딴 공로로 취업해 미국 본사에 근무한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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