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다. 이년 전 4월에 입대를 했던 아들이 봄을 안고 돌아왔다. 말년휴가다. 무사히 돌아오겠다며 경례를 하고 떠난 후, 두 번의 봄이 지나갔다. 마음 한 자락을 떼어 아들 꽁무니에 딸려 보낼 땐 2년이 참으로 아득했다.
봄이 봄 같지 않았고 여름의 불볕 더위가 부담스럽기만 했다. 아들이 더우면 어미도 더웠고, 아들이 추우면 어미는 그보다 더한 추위에 마음을 떨곤 했다. 지난 겨울은 너무나 지루했다.
야간근무를 서던 중 산돼지가 왈칵 달려드는 통에 등줄기로 전류가 흐르는 경험을 했다는 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영하 20도의 한파에 계곡의 얼음을 깨고 릴레이로 물을 퍼다 날랐다는 고충은 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GOP 근무를 끝내던 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아들을 건강한 그대로 돌려줘서 고맙습니다"라고.
WBC 4강에 참가했던 선수들에게 병역을 면제해준다는 뉴스를 듣고 분개했다. 뜬금 없이 병역면제 얘기가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기정사실로 만들었다. 야구선수들이 국제경기에서 거둔 성과에 나 역시 박수를 쳤다.
그러나 그 성과가 온 국민의 아들이면 누구나 감당해야 할 병역의 의무를 면제해줄 만한 명분이 되는가? 그러면 비인기 종목에서 뼈를 깎고 있는 선수들은? 운동경기 아닌 분야에서 나라에 헌신하고 있는 이들의 수고로움은? 병역의무를 기피한 어느 가수를 국외로 추방한 의미는? 형평성이 기울기 시작하면 문제에 문제가 꼬리를 무는 법이다. 그럴 때마다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문제에 휩쓸려 다닐 것인지.
스포츠 메달리스트나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는 선수를 넘어서서 한류스타 병역면제까지 거론되었다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정치인들의 노리개도 아니고, 걸핏하면 병역특혜를 들먹이는 의도가 미심쩍다.
누구를 위한 특혜인지 모르겠다. 통일이 되기 전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병역의무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엔 어떤 특혜가 있어서도 안된다. 일부에게 준 특혜로 인해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이 느껴야 할 위화감을 왜 모른 체 하는지. 지금 많은 젊은이들이 가슴에 커다란 바위를 안은 기분으로 입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봄을 두 번만 보내면 된다는 말로 힘을 얹어주고 싶다. 거기도 봄이 지나간다.
봄이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봄이었으면 좋겠다. 세상이 어떤 고달픈 문제에 시달리건 말았건 봄은 저 홀로 아름답다. 개나리와 목련에 이어 벚나무가 서둘러 꽃을 피운다. 꽃망울 터지는 소리로 천지가 부산하다. 개나리가 피고부터 불면의 밤이 잦아졌다. 책을 뒤적거리거나 음악을 들으며 서성이다 보면 날이 부옇게 밝아온다.
18세기의 카이저링크 백작은 불면증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 밤 연주자를 불러 챔발로를 연주하게 했다. 작곡을 의뢰받은 바하가 곡명에 그 연주자의 이름을 붙인 것이 바로 '골트베르크 변주곡'이다. 베토벤과 리스트조차 격찬했다는 음악. 불면의 밤에 30개의 변주곡을 들으며 깨어 있는 것도 봄의 불면을 다스리는 길이다.
4월이다. 괜한 술렁거림에 조바심을 치다보니 봄의 여울 깊숙이 들어와 있다. 천지간이 온통 축제의 도가니다. 개나리 꽃물결에 반한 청둥오리와 논병아리가 물놀이에 바쁘다. 잠자던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돋고, 꽃망울이 박수를 치듯 화들짝 깨어나는 건 봄이 연출한 예술의 작용이다.
장 뒤뷔페가, 예술은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무엇인가를 전달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봄은 축제에 참가하는 연인들의 발걸음처럼 성급하다. 나날이 미색을 달리하는 봄의 치맛자락이라도 만져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아들이 무사히 돌아왔으니 이제 아무런 걱정이 없다.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봄이다.
장정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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