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만의 첫 투표 설레네요" 화교 주배태 씨

입력 2006-04-06 11:03:18

"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이 가게를 찾아 와 손을 잡으며 '잘 부탁한다'고 말할 때면 '저는 투표권이 없습니다'라는 말이 나오려다 말곤 했죠."

경북 안동에서 50년 넘게 살아 온 화교 주배태(64·요식업)씨는 5.31 지방선거에서 난생 처음 '투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공직선거 사상 처음으로 이번 선거에서 영주권 취득 후 3년이 지난 19세 이상 외국인에게 투표권이 부여되기 때문. 주씨를 포함해 안동에서는 모두 20명이 타국 아닌 타국에서 난생 처음 투표를 하게 된다.

"64년 동안 한국 땅에서 살았는데 내 손으로 주민대표를 뽑을 수 있게 되다니 감개무량합니다"

1942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주씨는 인천과 충북 영동 등을 거쳐 6.25 전쟁직후인 1953년 가을에 안동으로 왔다. 주씨 가족은 대다수 화교가 그랬듯이 중국 음식점 경영으로 생계를 이어 나갔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일제 강점시대를 살고 8.15 광복을 맞았으며 8살이던 6.25 때는 부모님 손을 잡고 해주에서 인천까지 피난을 가기도 했다는 주씨는 영락없이 한국인의 삶을 살아왔다.

"선거 때마다 누가 후보로 나왔는지 궁금해서 합동연설회장을 찾아가 사자후를토하는 후보들의 연설을 듣곤 했지요. 그러나 재미삼아 듣다가도 곧 나와는 상관 없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리곤 했습니다."

주씨는 그 때마다 한국 땅에 사는 이방인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깨닫고는 한동안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했다.

안동에 터를 잡을 당시인 50~60년대만 해도 안동에 사는 화교들이 150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겨우 30명이 될까 말까하다.

주씨는 "2002년에 영주권을 취득했지만 거류연장 신청을 하지 않아도 된 것 말고는 달라진 게 거의 없다"면서 "비록 20명에 불과해 별다른 영향을 끼칠 수는 없겠지만 소수자의 권리가 존중되는 한국 지방자치를 위해 반드시 투표에 참가하겠다"고 말했다.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