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위기'라는 말도 벌써 10년이 돼 간다. IMF위기 이후 불과 몇 년 만에 보편적인 얘기가 됐다. 이제는 되물을 때가 됐다. 과연 이공계는 아직도 위기인가, 어떤 전망이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등. 특히 진로를 고민하는 중·고교생들과 학부모들은 속 시원한 얘기가 듣고 싶다.
답을 구하기 위해 포스텍(옛 포항공대)을 찾았다. 이학·공학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외부 강연을 하고, 다양한 매체에 기고를 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는 분야별 교수 4명을 만났다. 김승환(물리학과)·이시우(화학공학과)·이진수(전자전기공학과)·임경순(인문사회학부) 교수. 약속이나 한 듯 크게 다르지 않은 답변들을 내놓았다. 굳이 답변자를 구분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 대담 내용을 옮긴다.
-이공계는 아직도 위기인가.
▷위기론은 이제 바닥을 친 듯하다. 그 동안 많은 걱정의 목소리들이 있었고, 관심과 지원이 높아졌다. 남은 문제는 학생들이 이공계에 희망을 갖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아직도 이공계가 IMF 직격탄을 맞았다는 데 대한 기억이 크다. 이공계에 직장이 창출되고 대우받는 쪽으로 분위기를 더 만든다면 많은 청소년이 진로를 모색할 것이다.
-이공계에서 어떤 전망을 찾을 수 있나.
▷전자·전기·IT 분야는 우리나라가 당분간 계속 세계 1위를 달릴 것이다. BT의 경우 IT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융합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 실정으로 봤을 때 2050년까지는 엔지니어가 주도해야 한다. 국부를 더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경영이나 금융 등 다음 단계의 강국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공계 자체로만 봐도 고급 엔지니어가 부족하다. 중국이나 인도 등에서 보통의 엔지니어는 싸게 구할 수 있지만 고급 인재는 턱없이 모자란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공계 위기를 불식시켜야 한다고 하는데 어떤 의미인가.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그것이 곧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이다.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우수 인재다. 우수 인재들이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에 몰두할 수 있도록 기업들도 분위기를 바꾸고 있으며, 좋은 엔지니어들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이공계 인재에 대해서는 아직 기술자라는 인식이 강한데.
▷사실이다. 이공계라고 하면 기계적으로 사고하는 기술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이공계에도 풍부한 창의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한 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는 창의력을 가진 이공계 인재들이 이끌어야 한다.
-기술적인 분야 외에도 진로가 있다는 얘기인가.
▷지식기반사회는 각 분야의 융합을 요구한다. 그런 면에서 이공계가 훨씬 유리하다. 이공계 학생은 경영학이나 인문학으로의 진출을 얼마든지 모색할 수 있지만 뒤집어 생각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CEO는 물론이고 작가, 애니메이션 제작자, 심지어는 펀드매니저에게도 과학 마인드가 필요한 시대가 될 것이다.
-현재 이공계의 교육방식으로 그런 상황이 가능하겠는가.
▷물론이다. 이미 전공 분야 외에도 리더십, 대중·사회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 윤리의식과 정직함 등을 갖춘 이공계 인재를 기르는 쪽으로 교육이 바뀌고 있다. 학생들 스스로 전망을 키우고 상상력을 길러서 진로를 넓힐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교육받은 학생들이 미래 지식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축이 될 것이다.
-이공계 학생들에게도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가.
▷당연하다. 과학자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연구 성과를 학회나 논문 등을 통해 알리기도 하지만 대중이나 사회와 의사소통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글쓰기 능력은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포스텍의 경우 일찍부터 교양과정에 글쓰기를 필수로 하고 넣고 있으며, 계속 강화하는 추세다. 이는 전국 이공계 학과들로 확산되고 있다. 기술적인 글쓰기뿐만 아니라 철학이나 시사적 글쓰기, 나아가 말로 표현하기까지 가르치고 있다.
-인문계열 학생들은 고교 때 과학을 별로 배우지 않고, 수능시험에서도 치지 않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과학기술의 사회적 영향력과 비중이 이만큼 커졌는데, 이를 모르고 사회를 이해할 수는 없다.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인문계열 학문이므로 세부적인 내용은 아니라도 실제 생활을 해나가는 데 필요한 정도는 알아야 한다. 지식기반사회는 IT, BT 등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지식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누구나 어릴 때는 수학, 과학에 관심도 많고 공부도 많이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소홀해지는데.
▷초등학교까지만 해도 과학 위인전을 읽고 배우거나 과학 실험하기를 즐긴다. 그런데 입시 위주로 공부가 바뀌면서 급격하게 멀어진다. 중·고교 교육이 다양해져야 한다. 문제풀이만 할 게 아니라 모든 과목을 실생활과 밀접한 형태로 익히게 해야 한다. 과학 교육도 미래사회를 전망하고 자신의 진로 분야를 한층 더 깊이 내다볼 수 있도록 한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강화돼야 한다. 야구 선수가 되고, 연예인이 되더라도 과학을 알아야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학부모들의 의식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은데.
▷부모가 먼저 과학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지금 부모의 눈으로 미래를 봐서는 안 된다. 우리 아이가 살게 될 시대를 내다보고, 진로 결정에 도움을 주려면 과학에 대한 이해를 더 넓혀야 한다. 사고의 지평을 열어준다는 점에서도 과학은 유용하다. 과학은 상상력과 호기심의 산물이며 창의성의 발현이다. 어떤 쪽으로 진로를 택하더라도 과학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대담·정리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김승환 교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포스텍 뇌연구센터 소장, 아태이론물리센터 사무총장, 한국과학재단 평가자문위원.
"이공계 학생은 경영학이나 인문학으로의 진출을 얼마든지 모색할 수 있다. 인문학을 한 학생은 이공계로 전환하기 어렵지만 이공계 출신은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펀드매니저도, CEO도 될 수 있다."
권하는 책 :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를 권한다. 과학 관련 책들이 어렵다면 SF소설도 좋다. 과학콘서트는 과학자로는 아주 잘 쓴 책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복잡하게 일어나는 사회 현상이 서로 연관돼 있으며, 과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점을 소개하고 있다.
▶이시우 교수
포스텍 화학공학과 교수, 포스텍 교무부처장·연구처장 역임, 시스템온칩공학연구소장.
"IT 분야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지만 '타도 한국' 구호가 세계적으로 나오고 있으므로 우리의 지위도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국가든 기업이든 지속적으로 투자를 늘릴 것이고, 그 속에서 전망은 넓어진다."
▶이진수 교수
포스텍 전자전기공학과 교수, 포스텍 연구처장 역임,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수상, 미국전기전자공학회(IEEE) 정회원.
"2050년까지는 엔지니어가 우리나라를 이끌어서 국부(國富)를 더 쌓아야 경영, 금융 등 다음 단계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다. 세계적으로 고급 엔지니어가 부족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권하는 책 : '우리 옆집 과학자'를 읽어 보라. 정보통신, 물리, 화학 등 각 분야에서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받은 과학기술자 24명의 연구 성과를 소개한 책이다. 무엇으로 상을 받았느냐보다는 연구의 과정 전체를 보여주고 있다. 내가 미래에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임경순 교수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과학사 교수, 포스텍 과학문화연구센터장, 한국과학사학회 부회장, 대구·경북지역혁신협의회 과학기술분과위원장
"한 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는 이공계 인재들이 이끌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창의력을 갖춘 인재들이 필요하다. 국가적으로 중장기적 지원체계를 갖춰야 하고 기업도, 대학도 여기에 힘을 보태야 한다. 그 속에 이공계의 전망이 있다."
권하는 책 : 쉬운 과학책만 읽으려고 하지 말고 어려운 책도 힘들여가며 읽어라. 보람이 있다. 수백억 년의 우주 역사가 시작된 기원을 보여주는 스티븐 와인버그의 '최초의 3분', 아인슈타인의 연구를 발전시킨 초끈이론을 설명하는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 등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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