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각성의 현장을 찾아서] ③커다란 종에 모아 나타낸 소망-성덕대왕 신종

입력 2006-03-31 07:44:21

봉덕사(奉德寺)는 경주 북천 남쪽의 남천리에 있었다고 한다. 성덕왕이 증조부 무열왕을 위해 창건하기로 한 절인데, 아들 효성왕이 738년에 완공했다. 효성왕의 아우인 그 다음의 경덕왕은 성덕왕을 위해 큰 종을 만들기로 했으며, 아들 혜공왕이 771년에 공사를 끝내고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이라고 일컬었다.

봉덕사는 북천이 넘쳐 묻히고 말아 폐사되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1460년경에 김시습(金時習)이 시를 남겨 종의 소식만 가까스로 전한다. 관가에서 걸어두고 군사들을 모을 때 치는 종이 되었지만, 모습과 소리, 새겨놓은 명문(銘文)이 큰 감동을 준다고 했다.

거물신조위 천고불가득(巨物神造휘 千古不可得· 신이 도와서 만든 크나큰 것 천고에 다시 얻지 못하리라.)

웅웅거학향 은은음교경(雄雄巨壑響 隱隱吟蛟鯨· 웅웅거리면서 큰 골까지 울리고 은은한 고래 소리를 내네.)

아래독기명 가상천고정(我來讀其銘 可想千古情· 내가 가서 그 명문을 읽고, 천고의 정을 생각할 수 있도다. )

무지일태식 공치비소평(撫之一太息 工치非所評· 만져보고 숨을 한 번 크게 내쉬기만 하지, 잘 쓰고 못 쓴 것을 평할 바는 아니다.)

종은 그 뒤에도 피란살이를 면하지 못했다. 1506년에 종각을 다시 만든 것 같다. 1915년에는 당시의 경주박물관으로, 1975년에는 현재의 국립경주박물관에 가져다 놓았다. 별도의 시설을 만들어 밖에 내다가 달아놓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높이 3.33m, 지름 2.27m나 되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손상을 막기 위해 종을 치지 않지만 종소리 녹음을 들려준다. 맑고 낮은 소리가 길게 울려나오게 만들었다. 놀라운 수준의 과학이고 기술이다. 전체적인 모습, 비천(飛天)상이 새겨져 있는 조각, 세부의 조형까지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뛰어난 미술품이다.

종에 새겨놓은 명문이 또 하나의 소중한 문화재이고 최고의 문학작품인데,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해 흐려져 거의 알아볼 수 없다. 자세히 보면 그 흔적만 두 면에서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한쪽에는 산문으로 쓴 서(序)를, 다른 쪽에는 네 자씩 짝을 맞추어 율문을 만든 명(銘)을 배치했다. 그 둘을 다 갖추는 것이 금석문을 쓰는 격식이다. 그 둘을 각기 새겨놓은 것은 종의 특성을 고려한 특별한 방법이다. 마멸이 심하지 않을 때 만들어둔 탁본이 있어 무어라고 썼는지 알 수는 있어 다행이다.

종각 곁에 나즈막한 안내판을 세워 한문 원문과 번역을 한 대목씩 번갈아 써놓았는데, 서만 있고, 명은 없다. 그 둘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설명하지도 않았다. 서에는 이 글 첫머리에서 든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소중한 사료가 된다고 여기는 것은 얄팍한 생각이다. 서를 시작하면서 종을 울리면 소리가 멀리 퍼져나가서 모두 한 가지 생각을 갖게 한다면서 그 소리가 무엇인지 말한 데 놀라운 철학이 있다.

무릇 지극한 도는 형상 밖을 둘러싸고 있어서 눈으로 보아서는 그 근원을 알아볼 수 없다. 큰 소리는 천지 사이에서 진동해 귀로 들어서는 그 울림을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가설을 세우는 데 의지해 세 가지 진실의 오묘한 경지를 보듯이 신종을 매달아놓고 일승(一乘)의 원음(圓音)을 깨닫는다.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들의 한계를 넘어서서 있는 궁극의 진리를 깨닫게 하려고 종소리를 듣게 한다고 했다. 불교의 이치를 일러주었다고 하고 말 것은 아니다. 보이고 들리는 세계에서는 설사 대립과 갈등이 심각하다고 해도 그 이상의 질서는 온전하다고 하면서 국가적인 단합의 이상을 제시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동해지상 東海之上 동해 바다 위에 있고

중선소장 衆仙所藏 뭇 신선이 사는 이곳.

지거도예 地居桃壑 땅은 복숭아 골짜기에 있고,

계접부상 界接扶桑 경계는 해 뜨는 곳과 닿았네.

원유아국 爰有我國 여기서 우리나라는

합위일향 合爲一鄕 합쳐서 한 고장을 이루었네.

원원성덕 元元聖德 높고 높아 성스러운 덕

광대이신 曠代彌新 대가 뻗을수록 새로워라.

묘묘청화 妙妙淸化 오묘하다 청명한 교화여.

하이극진 遐而克臻 먼 곳일수록 더 잘 이르네.

명에서는 이런 말로 신라를 예찬했다. 자랑스럽기 이를 데 없는 나라가 합위일향(合爲一鄕)해서 더욱 빛난다고 했다.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아우른 것이 정복이 아니고 통일임을 분명하게 했다. 통일된 조국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각오와 다짐을 말했다. 나라 구석까지 성스러운 교화를 펴 모든 것이 새롭게 뻗어나가게 하고, 다시는 흔들리지 않을 질서를 기반으로 만대의 번영을 누리자고 했다.

글을 지은 사람은 김필오(金弼奧)이다. 벼슬이 한림랑(翰林朗)이고, 직급은 급찬이라고 했으니, 육두품이다. 최대의 포부를 갖추어 국가 이념을 다시 선포하는 문장을 최고관직의 진골이 아닌 하위직의 전문가가 맡아 짓도록 했다. 그런데도 이름을 새겨놓아 시대가 달라진 것을 보여준다.

종의 내력에 관한 전설도 있다. 종을 만드니 시주하라고 다니는 승려에게, 혼자 사는 가난한 여인이 아무 것도 없으니 자기 딸 봉덕이나 줄까 하고 농담했다. 종을 몇 번 만들어도 울리지 않아 그 탓이라고 했다. 부처님을 속이지 말고 훌륭한 공덕을 닦으라고 하다가, 말을 듣지 않아 왕명으로 딸을 데려가 쇳물 가마에 넣고 다시 만들었더니 소리가 났다고 한다. 다른 전승에서는 그 여인이 종을 만드는 장인의 누이였다고 한다. 종을 만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아 장인은 고민이었다. 시주하라고 다니는 승려가 그 여인에게 딸을 희생시켜야 소리가 난다고 했다. 여인은 고민하다가 오빠를 위해 딸을 내놓기로 했다고 한다.

그 다음 설명은 양쪽 공통이다. 희생당한 여자 아이 이름을 절 이름으로 해서 봉덕사종이라고 한다. 지금도 종을 칠 때마다 그 딸이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에밀레하고 난다. 나라에서 만든 거대한 종에 가련하기 이를 데 없는 사연이 얽혀 있다. 지나친 부조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전설은 근거가 없다고 부인할 수 있다. 종을 만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가 여인의 농담 때문일 수는 없다. 봉덕사라는 절 이름이 아이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소리가 에밀레라고 들리는 것은 어느 종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전설은 없어지지는 않는다. 오래 전승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 마음속에 각인되고,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의미를 캐는 것이 적극적인 자세이다. 동원할 만한 방증이 따로 없어 전설 자체를 증거로 삼아 추리를 하기로 한다.

전설이 종을 만드는 데 하층민도 관여한 사실을 말했다고 보면 어떨까? 국가의 힘을 배경으로 봉덕사에서 강제로 일반 백성이 가진 것들을 바치게 하고서 부처님이 알아주는 공덕을 쌓았다고 말했을 수 있다. 그래서 빚어진 수난을 한 번만 들어도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이야기에 담아, 종소리가 원망 소리로 들리도록 만들었다. 강압형과 자진형을 갖추어 양면 작전을 폈다. 이것 또한 대단한 작품이고 문화재이다.

종의 명문을 육두품 문인이 맡아 쓴 사실이 전설에서 하층의 소리를 전하는 것과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신라가 높고 높아 성스러운 덕 대가 뻗을수록 새로워라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삼국의 분열을 극복하고 "합쳐서 한 고장을 이루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국가에서 만든 종, 육두품 문인이 쓴 문장, 민중이 지어낸 전설이 각기 그것대로 소중한 의의를 지니고 상극하면서 상생하는 관계를 가져 그럴 수 있었다. 사회 저변에서 올라오는 힘을 누르지 않고 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때 신라는 위대했다가 상층이 특권을 지키고자 하면서 망조가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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