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몰린 삶의 위기에서 벗어나 희망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의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개인파산과 이후의 면책결정은 그들에게 회생의 꿈을 갖게 해 줬다.
김재영(가명'34'경산시)씨는 지난 2004년 7월 대구지방법원으로부터 면책결정을 받았다. 4억 원의 빚을 갚을 길이 없어 개인파산을 신청한 지 6개월 만이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제조업체를 운영하다가 외환위기 때 거래업체의 부도로 '유탄'을 맞은 경우.
은행대출금 등 당시 부채는 10억 원 규모였다. 공장과 집 등 있는 재산을 다 정리했지만 빚을 청산할 수 없었다. 부도 이후 가족들은 떨어져 살아야 했다. 중소기업 사장이었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매형의 도움으로 허름한 식당을 얻어서 밤낮 없이 일했고, 김씨는 비정규직으로 작은 업체에 취직해 일했다. 그렇게 벌어서 갚아도 원금은커녕 연체이자를 감당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래서 개인파산 신청을 결정했다.
면책결정을 받으면서 김 씨는 안정적인 직장인이 됐다. 근로소득세를 내고, 4대 보험에 가입할 자격이 생겼다. 하지만 겉보기엔 일반인과 다름없어 보이지만 '특수기록정보'란 꼬리표가 그의 발목을 잡는다. 은행계좌를 개설할 순 있지만 신용카드를 발급이나 대출을 받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
김씨는 "면책결정을 받기 전까지 경제적, 심리적 고통은 표현하기 어렵고, 생각조차 하기 싫다"며 "착실히 돈을 모아서 다시 사업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연말 면책결정을 받은 이영자(가명'35'여'대구시 북구) 씨. 이혼을 한 뒤 작은 제과점을 운영하면서 혼자서 아이를 키워왔다. 그러던 중 아들이 패혈증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했고, 병 수발을 하느라 제과점 문도 닫아야 했다. 병원비와 생활비가 부족해 마이너스 통장에 의존해야 했다. 게다가 올케의 대출보증을 해 준 것이 문제가 돼서 그 빚까지 떠 안게 됐다.
그렇게 해서 생긴 빚은 2천여만 원. 면책결정을 받은 뒤 이 씨는 친척의 도움을 얻어 다시 작은 제과점을 차렸다. 아직 하루 벌어 하루 쓰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끝 모를 빚의 늪에서 벗어난 것 자체가 이씨에겐 희망이다.
박영철(가명'36'구미시) 씨는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등의 이유로 직장을 잃었다가 간신히 새 일자를 구했다. 하지만 회사가 적자를 이유로 임금을 체불하는 바람에 생활고에 시달렸다. 게다가 둘째 아이까지 태어났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었고, 그 빚을 신용카드로 돌려 막다가 결국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박씨는 3천700여만 원의 빚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개인파산 신청을 해서 지난 2월 면책결정을 받았다. 그는 "건설현장이나 공장에서 일용직으로 일 하면서 겨우 생계를 이어가지만 지긋지긋한 빚 독촉에서 벗어날 수 있어 마음만은 홀가분하다"며 "부지런히 일해서 전셋집을 마련해 가족과 오순도순 살고 싶다"고 했다.
면책결정은 개인파산자의 남은 빚을 탕감하고 경제적, 법적 권리를 일반인 수준으로 회복시키는 제도이다. 지금 그들은 면책결정으로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2006년 3월 30일자 라이프매일)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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