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앞둔 공무원들, 판세따라 '좌불안석'

입력 2006-03-30 10:08:13

대구시 구청 공무원 A씨는 며칠 전 친한 고교후배와 식사자리에서 들은 이야기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제가 일하는 구(區)의 구청장 후보 선거 캠프에서 일하는 한 후배는 자신이 미는 후보가 당선될 거라고 장담하며 안면을 트는 것이 어떻겠냐고 귀띔해 줬어요. 승진을 바라보는 입장이라 솔직히 고민이 됩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으니까요."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시내 각 구·군청 공무원 사회의 분위기가 엇갈리고 있다. 현직 단체장이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된 구청의 공무원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반면, 경합지역 공무원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것.

특히 현직 구청장이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나오는 지역 공무원들의 시름은 더 크다. 현직 단체장의 무소속 출마 가능성이 나타난 대구 중구청. 이 곳 한 공무원은"과장 승진을 바라보는 이들(6급)은 어느 쪽에 설지 고민하기도 할 텐데 판세마저 장담할 수 없으니 솔직히 난감하다."고 했다. 그는"괜히 줄을 잘못 섰다가 나중에 불이익을 당하느니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이들도 있는데 모두 거짓말처럼 들린다."고 전했다.

대구 중구와 남구 경우, 현직 단체장의 무소속 출마 결심이 흘러나오면서 '공무원 2명이 모이기만 하면 판세 분석'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현직 단체장이 출마않는 대구 달성군도 마찬가지. 한나라당 공천을 두고 3, 4명의 후보들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가운데 벌써부터 일부 공무원들은 어느편에 설지를 두고 고민하는 분위기다.

이 곳 한 공무원은"예전부터 선거 때만 되면 직원들이 줄서기를 하고 그 결과가 인사에 반영된다는 불만이 있었음에도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데 이런 수준으로는 기초단체장을 선거로 뽑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자괴감마저 든다."고 했다.

이 같은 현상과 관련,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지방단체장의 인사권을 견제할 지방의회까지도 특정정당에서 독점하는 탓에 공무원들이 줄서기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며 "단체장과 지방의회 모두 한 정당에 표를 몰아주는 유권자들의 행태가 개선되지 않으면 이 같은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 진단했다.

박세정 계명대 행정학과 교수는 선거철 공무원 줄서기가 행정이 시스템화돼 있지 않은 탓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단체장에게 권한이 지나치게 집중돼 '닭장 문이 열려 있는 셈'이라 단체장 스스로 전권을 행사하고픈 유혹을 받기 마련"이라며 "승진대상자들에 대해 실·국장 공개회의에서 평가를 한 뒤 내.외부 인사가 참여한 가운데 여러 차례 면접을 통해 실력 있는 사람을 가려내는 방식을 도입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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