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쌀 '밥상 공습'] ⑤쌀 산업 무너지나?

입력 2006-03-30 08:51:56

"산지에서는 벌써 쌀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RPC(미곡종합처리장) 업체들이 수입쌀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원가 이하의 가격에 쌀을 내놓는 등 출혈경쟁도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경북 의성 안계농협 윤태성 조합장은 일부 산지농협과 민간 RPC, 소형 정미소에서는 수입쌀이 채 시판도 되기 전 덤핑경쟁에 나서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윤 조합장은 "지난해 가을 쌀파동으로 수매량은 예년에 비해 크게 늘어났으나 쌀소비는 점점 주는 상태에서 수입쌀의 국내 시판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으며, 재고가 창고에 쌓이면 경영부담은 물론 자칫 부도로도 이어질 수 있어 출혈경쟁은 불가피한 선택"이라 진단했다.

특히 윤 조합장은 "수입쌀이 국내산 쌀(일반쌀 기준)과 비슷하게 가격이 책정되면 소비자들은 수입쌀을 사먹을 가능성이 높고 만일 수입쌀이 국내산 쌀보다 가격이 더 떨어지면 그 피해는 더 심각할 것"이라 우려했다. 그는 또 "특히 지난해 벼를 비싸게 수매했던 농협 RPC들 가운데 재고소진을 위해 출혈경쟁에 나선 농협들은 연말 결산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 걱정했다.

◆비상 걸린 농촌

"국내 쌀시장에서 일반 쌀의 가격기준이 없어졌습니다."

경북 의성 다인농협 RPC 강인석 상무는 "최근 할인점 등지에서 일반 쌀의 가격기준이 깨졌으며, 5만 원 넘는 쌀도 매장에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강 상무는 "강원도 철원의 오대 쌀과 경기도 이천의 임금님표 쌀 등 서울과 수도권 소비자들이 선호하던 쌀들이 한 달 사이에 무려 7.4%나 폭락하는 등 수입쌀이 시판도 되기 전부터 시장에서 국내산 쌀값이 요동치고 있다."고 덧붙였다.(도표1 참조-국내 쌀가격 추이 관련)

특히 강 상무는 "현재 경북의 민간 RPC와 소형 정미소에서는 20kg 쌀 한 포대에 3만 1천500원 정도에, 농협에서는 3만 4천 원에 출고하고 있지만, 이 같은 가격이 또 언제 내려갈지는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고 걱정했다.

이와 같이 4월 수입쌀의 일반 시판을 앞두고 중·저가미를 생산하고 있는 경북 대부분의 농협과 민간 RPC, 소형 정미소들은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수입쌀 시판을 지켜봐야 하는 농민단체와 농민들도 불안감에 휩싸여 있기는 마찬가지.

이들은 수입쌀이 본격 시판될 경우 쌀 값 하락은 한 편 드라마의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수입쌀이 국내 쌀시장을 잠식할 경우 쌀농사를 포기하고 타작물로 전환하거나, 이농하는 농민들이 속출, 우리 쌀 산업이 서서히 붕괴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

한국농업경영인 박만진(51) 의성군연합회장은 "다수 농민들이 정부의 소득보존 직불제에 매료돼 수입쌀의 실체를 별로 의식하지 못하는 분위기"라며 "수입쌀 시판은 올해와 내년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5년 후나 10년 후 우리 쌀산업을 붕괴시킬 주범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입쌀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수입쌀이 일반에 시판되면 국내 쌀값은 얼마나 영향을 받을까? 지난해 수확기 산지 쌀값이 16만 원에서 13만 원대로 폭락한 것은 추곡수매 폐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입쌀이 올해부터 우리 밥상에 오른다는 우려도 적잖게 작용한 데 따른 것이다.

이 무렵, 농림부 당국은 "시장에 풀릴 시판용 수입쌀은 국내 쌀 소비량의 미미한 수준에 불과해 국내 쌀 가격을 크게 뒤흔들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또 한국농촌경제연구원도 밥쌀용 수입쌀 1만t이 풀릴 때마다 국내산 쌀가격을 1kg당 10원씩 떨어뜨릴 것으로 관측했다.

1만t이 풀릴 때 80kg짜리 백미 한 가마 쌀값을 800원 떨어뜨린다면 올해 5만 7천t이 일반에 시판되므로 4천500원 정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는 셈.

그러나 산지농민들은 쌀 재고량이 넘쳐나고 마땅히 팔 곳도 없는데다 추곡수매도 없어진 마당에 품질이 엇비슷하다면 시장 논리에 따라 국내산 쌀도 수입쌀 가격과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게다가 공매로 낙찰받은 밥쌀용 수입쌀의 브랜드 이름과 몇 kg짜리로 포장해서 팔 것인지는 낙찰업체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으며, 10kg, 20kg짜리로 들어온 수입쌀 포장재를 뜯은 뒤 5kg, 3kg짜리 등 소량으로 재포장해 팔 수도 있어 국내 쌀 시장잠식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수입쌀'이라는 말 대신 '맛있는 쌀' 등으로 이름을 붙여 팔 수도 있고 국내산 쌀과 혼합해 판매하는 것도 가능하며 다만 포장지에 원산지와 혼합 비율을 정확히 표시하면 문제될 것이 없어 소비자들의 쌀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수입쌀 시판 물량이 중저가로 몰릴 전망이어서 국산 고가미의 가격은 저가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떨어지고 고가미 지역의 RPC들의 취급 물량 또한 상대적으로 덜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중저가미 생산지역 경우, RPC들이 벼 구입량을 줄이고 매입가격도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돼 중저가미를 생산하는 농민들은 소득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했다.

◆되풀이되는 악순환

쌀값 하락은 우리 농민들의 절대적인 수입원인 쌀 재배 의욕을 떨어뜨리고 쌀 재배 포기에 따른 소득감소와 벼 면적 축소와 작목 전환, 작목 선택을 둘러싼 혼란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쌀산업 위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표2 참조)

농림부에 따르면 지난 95년 농가소득(2천180만 3천 원)과 농업소득(1천46만 9천 원) 가운데 쌀소득은 398만 4천 원으로 나타나 국내 농업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18.3%와 38.1%에 이르렀다. 그러나 쌀소득 비중은 계속 늘어 2003년에는 농가소득(2천686만 8천 원)과 농업소득(1천57만 2천 원)에서 쌀소득이 536만 9천 원으로 비중이 각각 20%와 50.8%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만큼 농가에서 쌀의 비중이 큼을 보여주고 있다.(표3 참조)

아울러 농가 호당 작목별 수입액 비중도 쌀이 가장 높아 2003년 경우 미곡이 34.1%, 채소와 축산이 각각 24.2%와 21.4%로 나타나 우리농촌이 쌀소득에 가장 많이 의존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쌀소비 감소에다 재고 누적, 수입쌀 물량 및 일반 시판 확대로 국내산 쌀시장이 잠식돼 쌀 재배가 위축되면 그만큼 농가소득 감소로 이어져 농촌경제는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농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정인열기자 oxen@msnet.co.kr 군위 의성·이희대기자 hd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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