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家)

입력 2006-03-25 07:39:14

가(家)/ 김서령 지음 / 황소자리 펴냄

"한 사람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그 집 현관 안에 발을 들여놔 봐야겠더라, 그게 사람을 읽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더라."

집은 과연 무엇인가?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은신처, 밥을 해먹고 잠을 자는 주거공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요즘의 집값을 생각한다면 재산을 늘려주는 좋은 투자처라고 답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집이 갖는 의미를 시원스레 풀어냈다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저자 김서령은 산골 아이였던 어린 시절부터 남의 집 구경하기를 좋아했다. 우리 집과 남의 집은 달랐다. 그래서 '사람은 제가 사는 집을 닮는구나' 생각했단다. 이는 저자가 가졌던 세계를 인식하는 최초의 방식이었고, 어른이 된 지금 그녀가 세상의 많은 구경거리를 제쳐두고 왜 하필이면 '남의 집 엿보기'에 나서게 됐는가를 설명해준다.

"영화나 그림은 문을 나오면서 몇 화면 외엔 잊어버리기 일쑤지만 남의 집 구경은 문을 나온 후에도 전체 장면이 고스란히 기억난다. 집에는 식구들 얼굴에 얹힌 표정, 서로간의 애정의 농도, 그 집만의 내음새, 감도는 기운, 벽에 걸린 그림, 오밀조밀한 부엌살림 등 삶의 모든 것이 집약돼 있다."

저자는 많은 사람이 일상의 괄호 밖으로 제쳐둔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쫓기 위해 우리 시대 교양인들이 사는 집 스물 두 곳을 찾아 나선다. 삶이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우리 시대 일반인들의 모범이 될 만한 격조와 품위를 갖고 있는 집들이 목적지다. 그리고 그 안에 숨쉬고 있는 집 주인의 오래된 이야기와 비밀, 켜켜이 쌓인 인생의 지혜들을 탐색한다.

집으로의 여행은 그러나 호화롭고 사치스런 고급 주택으로 향하는 발길이 아니다. 거기에는 원칙이 있다.

우선 대지와 건축비를 합쳐 서울의 30평 대 아파트 가격을 넘지 않는 집들을 골랐다. 그리고 투기를 위해 잠시 몸을 기대는 그런 사람들이 사는 집이 아니라 한 자리에 지긋이 붙박여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 곰삭여 온 사연들이 묻어 있는 집 안 구석구석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사람이 제대로 산다는 게 뭔지를 말없이 실천하는 삶, 행복과 충만이란 예상외로 단순하고 명료하다는 걸 몸으로 실증하는 우리 시대 교양인들을 만나보고 싶다."

그렇게 처음 발을 디딘 곳은 나주시 금천면 죽설헌. 먹으로 그림 그리는 시원 박태후와 그의 아내 김춘란이 사는 집이다. 뜰에는 대략 300여 그루의 나무가 자란다. 아무렇게나 치장한 것이 아니라 모두 집주인이 치밀하게 골라 심은 것들이다.

나무, 꽃향기, 맑은 물, 새소리, 사람의 웃음소리. 사람들이 떠올리는 낙원이 거기에 있다. 그곳에서 이 부부는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던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을 삶의 모델로 삼아 직접 농사지은 곡식과 채소만 식탁 위에 올린다.

'그렇구나 남들은 인생을 헛되다 말하지만 땅에 깃들어 묵묵히 나무를 심는 사람의 한평생은 짧지도 허망하지도 않다. 나무처럼 우뚝하고 당당하고 겸허하다.' 죽설헌은 저자의 머릿속에 그렇게 잔상을 남겼다.

북한산 아래 데니와 젬마 부부가 사는 집은 7평짜리 컨테이너 박스에 양 옆으로 2.5평, 1.5평짜리 비닐하우스가 하나씩 덧붙여 있다. 무욕의 삶은 실천하는 이 집 주인 부부는 값싼 재료로 집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 집은 마치 욕망과 물신과 자본주의의 해방구 같다. 집이 만약 넓었더라면 니키라는 개와 함께 사는 부부가 그토록 밀착될 수 없었으리라.

저자는 더 크게를 향한 갈망을 회의했고, 바쁘게 일하는 게 옳은 것이라는 일차적 판단을 반성했다.

오래된 집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 화가 윤명로의 평창동 집은 지은 지 30년이나 됐지만 낡기는커녕 시간이 만들어낸 은은한 품격으로 빛이 난다.

저자는 낮고 다정하며 품위 있는 목소리로 '집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한다.

"세월은 흐르고 사람은 사라진다. 그러나 집은 좀더 오래 남아 우리 삶을 증언한다. 집이 곧 삶이란 걸 깨닫게 된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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