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개종' 파문…서구-이슬람권 재충돌 조짐

입력 2006-03-24 11:01:52

아프가니스탄에서 기독교로 개종해 이슬람 율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사형당할 위기에 처한 압둘 라흐만(41) 사건을 놓고 서방권이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아직은 미국과 영국 독일 이탈리아 호주 및 덴마크 등 서방 권 나라들이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성토하는 상황이지만 아랍권의 다른 나라들이 아프가니스탄 편에 설 경우 마호메트 만평 파문 이후 또 한 차례 문명충돌 양상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22일 이 사건을 정치쟁점화 하겠다고 밝히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23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바람직한 해결'을 촉구한 이후 미국 내 반응은 한층 격렬해지고 있다.

부시 지지세력의 핵심인 미국 내 복음주의 기독교계의 토니 퍼킨스 가족연구소 소장은 "기독교인을 죽이는 이슬람 주의자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아프가니스탄을 성전 주의자들로부터 해방시켰다고 좋아라 하겠는가"라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기독계의 또 다른 인물 찰스 콜슨은 "우리가 개혁적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한 나라에서 근본적인 종교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외교정책 전반의 신뢰가 문제시될 것"이라며 부시 행정부를 겨냥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건은 심각한 것 이상이다. 야만적인 처사이다"라고 아프가니스탄측을 맹비난했다.

독일 뮌헨의 쥐트도이치차이퉁은 "카불 정권은 탈레반만큼이나 관대하다"며 빈정댔고, 디 벨트는 "만일 라흐만이 처형된다면 아프가니스탄은 야만의 암흑시대로 접어들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슬람 창시자 마호메트의 만평을 처음 게재해 아랍권의 반발을 초래했던 덴마크의 율란츠-포스텐은 시리아 출신 의원 나세르 카데르의 말을 인용, "필요하다면 덴마크 군대가 라흐만을 데려와 덴마크에 살게 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도 서슴지않았다.

프랑스의 '마리안 매거진'은 라흐만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아프간 정부가 그를 정신병을 이유로 재판에 처하지 않는다 해도 서방 비평가들은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신이 온전한 사람을 정신병동에 처넣는 것은 죽음보다 못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아프가니스탄 검찰측은 라흐만이 이미 16년 전 독일로 건너가 그 곳에서 기독교로 개종했고, 미국에 의해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직후인 2002년 아프가니스탄에 귀국했으며 최근 언론에 자신의 기독교 개종 사실을 밝혔다면서 그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유럽연합(EU) 순회 의장국인 오스트리아의 우르술라 플라스니크 외무장관은 "유럽연합은 라흐만이 처형당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티브 하퍼 캐나다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라흐만이 처형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했다면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원색적 비난은 삼가고 있다.

미국과 몇몇 서방권 언론의 반발에 대해 아프간 최고법원은 서방권의 비난을 의식해 "좋은 해결책"을 찾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사태 해결이 쉽지는 않다.

사건을 맡은 안사룰라 마울라비자다 판사는 라흐만이 기독교 개종을 취소하도록 최대한 설득하겠지만 라흐만이 기독교 개종을 고집할 경우 사형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수니파와 시아파를 막론하고 아프가니스탄 성직자들은 미국 등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라흐만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탈레반 정권 시절 3차례나 투옥된 경력이 있는 온건파 성직자 압둘 라울프는 " 이슬람 율법을 거부하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신이 모욕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간 울라마 위원회' 회원인 라울프는 "정부가 모종의 게임을 하고 있지만 아프간인들은 결코 농락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의 목을 쳐라"라고 외쳤다.

야지 야콥 사원의 성직자 하미둘라는 라흐만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정부측의 설명에 대해 "언론에 나서 공개적으로 기독교 개종 사실을 밝히는 등 정신이 멀쩡하다"며 즉각 그를 재판에 회부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만일 아프간 정부가 서방권의 압력에 굴복해 라흐만을 석방한다면 주민들이 그를 죽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바레인에서 열린 마호메트 지지를 위한 국제회의에 참가한 250명의 이슬람학자들은 23일 성명을 통해 마호메트 만평이 게재된 나라들의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은 '문명화된 항의의 표시'라며 이 불매운동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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