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변의 봄·봄·봄

입력 2006-03-23 16:15:02

경남 하동읍에서 섬진교를 건너 매화마을로 향한다. 섬진교에서 매화마을까지는 3km 남짓. 입구에서부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온통 매화나무 일색이다. 길가 여염집 담벼락에도, 마을 뒷산 중턱에도, 저 멀리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섬진강가에도 매화가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 놓았다.

잠시 차를 세울 곳을 만난다. 섬진강 유래비가 서 있는 수월정. 섬진강변 조망대다. 수월정과 유래비 사이에는 돌로 조각한 두꺼비 네 마리가 있다. 고려 말 왜구가 쳐들어와 강을 건너려 할 때 두꺼비 떼가 나타나 울부짖자 왜구들이 놀라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강변 정자 앞 섬진강 유래비에 적혀 있다.

# 청매실농원은 꽃 천지

매화마을 관광의 백미는 매화의 원조인 '청매실마을'. 5만여 평의 산자락에 심어진 희고 붉은 매화꽃잎의 장관에 놀란다. 한마디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매화다. 온 산이 매화나무로 뒤덮였다. 코끝에는 숨을 들이쉴 때마다 꽃향기가 나고 눈을 뜨면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산기슭을 따라 굽이굽이 산책로가 마련돼 있어 한바퀴 돌며 꽃향기에 젖어볼 수 있다. 봄햇살에 수줍은 광택을 자랑하는 장독대 옆 산책길은 상춘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길. 연분홍 꽃을 활짝 피운 매화나무가 마치 시골 새댁처럼 수줍게 미소 짓는다. 꽃그늘마다 연인, 가족들이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사진작가들도 활짝 핀 매화를 렌즈에 담기위해 연신 셔터를 누른다.

오른편 언덕길로 올라가 모퉁이를 돌면 진짜 꽃밭이 기다리고 있다. 초가 정자에 서서 골짜기를 내려다본다. 매화는 발아래 골짜기를 흘러넘친 뒤 산등성 위까지 뒤덮었다.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면 장소마다 꽃들 생김이 조금씩 다르다. 눈부시게 흰 청매, 그리고 붉디붉은 홍매. 어떤 나무는 젊고 어떤 나무는 세월의 두께가 느껴진다.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섬진강 풍경도 감동을 준다. 매실과 매실장류가 가득 담긴 2천여 개 장독들과 바람이 불때마다 나는 은은한 소리가 일품인 대나무숲도 볼거리다.

결국 청매실농원에 오면 섬진강의 장엄함에 숙연해지고, 매화에 취하고, 장독대에 놀라고, 대숲에 감탄한다. 또 한 가지. 매화는 한창일 때도 예쁘지만 바람에 꽃잎이 날리는 일명 '꽃비'가 내릴 때 가장 아름답다. 이번 주말쯤이 그런 날이다. 그럼 두 번 올 수밖에.

섬진강의 봄은 그렇게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 소설 '토지'의 무대 최참판댁

다시 19번 도로를 타고 거슬러올라간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최참판댁. 소설 '토지'의 감흥을 느끼려는 관람객이 많다. 3천여 평의 부지에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초당 등 10여 동의 건물과 연못이 들어섰다. 서희가 거처했던 안채 뒤뜰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매화나무 한 그루가 외로움을 타는지 봄바람에 흔들린다. 좁쌀 크기만한 연분홍 꽃망울에서 서희의 얼굴을 그려본다. 한 관람객이 한 마디 한다.

"아이고 꽃이 참 참하기도 하다. 어릴 적 서희가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것만 같네~"

최참판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사랑채. 그 중에서 누마루가 매력적이다. 누마루에 올라서면 너른 악양들과 섬진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리밭이 싱그럽다. 특히 벌판 가운데 서 있는 소나무 두 그루가 눈길을 끈다.

# 정감가는 쌍계사

화개장터에서 우회전해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면 쌍계사가 나온다. 쌍계사는 웅장하면서도 오밀조밀한 맛이 느껴지는 사찰이다. 일주문과 금강문, 천왕문, 그리고 팔영루와 대웅전로 이어지는 구간이 거의 일직선에 가깝게 놓여 있다. 그래서 이 길을 걸어가면 부처님 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묘미를 안겨준다.

대웅전 앞마당에 있는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 이 비는 대웅전과 수평으로 서 있지 않고 고개를 돌린 채 비스듬하게 서 있다. 마치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을 은근슬쩍 힐끔거리면서도 몸은 혜능선사의 머리를 봉안한 금당 반대편으로 돌아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감선사의 공덕을 기린 비문을 감히 부처님 앞에 함부로 내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처음 대웅전과 수평으로 반듯하게 놓여 있던 이 비를 누군가 억하심정으로 비스듬하게 돌려놓았기 때문일까.

대웅전 앞마당 끝에서 오른편으로 난 길을 따라 옥천교를 건너 가파른 계단 위에 올라서면 금당(金堂)이 나온다. 금당 안에는 부처님 대신 중국 불교 선종의 제6대조인 혜능선사의 정상, 즉 머리를 모신 탑이 있다. 법당에 탑을 모신 곳으로는 이곳이 유일하다. 금당을 지키는 보살이 한 마디 한다.

"탑에 손을 얹고 돌면서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진다고 하니 거사님께서도 소원을 빌어보시지요."

금당 안에 들어서니 탑의 옥개석 부분에 손때가 시커멓게 나 있다. 탑 뒤에 난 구멍에 손을 넣고 보니 무엇부터 빌어야 할지 모르겠다.

# 차문화센터에서 차 한 잔

논란은 있지만 하동은 이 땅에 처음 차가 처음 재배된 곳이다. 차의 고장답게 주위 곳곳이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돈을 주고 마실 필요가 없다. 쌍계사 바로 밑에 있는 차문화센터가 가면 된다. 녹차체험관에 가면 차문화 전파라는 사명감으로 무장한 다인이 차를 가르쳐준다. 물론 무료다. 문의: 055)880-2833.

◇섬진강 재첩국

섬진강의 먹을거리 중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재첩이다. 염분이 적고 깨끗한 물에 사는 조개류인 재첩은 한겨울을 제외하곤 섬진강 하류에서 연중 잡힌다. 섬진강 재첩은 비린내가 나지 않으며 우려냈을 때 국물이 푸른빛이 감도는 것이 특징이다. 섬진강가에 늘어선 식당 대부분이 재첩음식을 낸다. 섬진교 바로 앞에 있는 '소문난 재첩국집(055-883-6011)'도 그런 집이다.

◇ 가는 길

구마고속도로를 타고가다 마산 조금 못 미쳐 칠원분기점에서 진주 방면으로 간다. 하동나들목에서 나와 하동읍으로 향하다 섬진교를 건너 우회전해 약 3km쯤 가면 매화마을이 나온다. 다시 섬진교를 돌아 나와 섬진강을 왼쪽에 두고 거슬러올라가면 최참판댁과 쌍계사, 차시배지, 차문화센터가 나온다.

사진.박순국편집위원 tokyo@msnet.co.kr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작성일: 2006년 0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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